'늦깎이 작가' 조용호(40)씨가 첫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문이당)를 냈다. 지난 98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조씨는 이른바 '386세대'의 맏형으로 80년대 독재정권에 대항한 운동권의 후일담을 여러 단편에 녹여냈다. 대학시절 노래패에 몸담았던 작가의 체험들이 풍성한 어휘로 직조돼 '슬픈사연'으로 구현된다. 표제작을 비롯 '그 동백에 울다' '황색 오르페우스' '이별' 등 11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은 옛 연인이 숨진 베니스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한 남자의 얘기다. 작중화자인 '나'의 옛 연인은 오빠가 노동운동을 하다 투신자살한 상처로 인해 방황한다. 학창시절 그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나'는 졸업 후 소시민으로 살지만 스스로 뽑은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따라 직장과 가정에서 퇴출된다. 베니스는 이승에서 떼밀려 나온 '나'와 그녀에게 저승이자 삶의 종착지다. '그 동백에 울다'에도 노동운동가로 공장 옥상에서 투신한 옛 남자를 못잊는 여류화가가 등장한다. 그녀는 동백꽃만을 그리다가 동백꽃 근처에서 실종된다. 동백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꽃이다. 그 꽃을 보면 늘 안쓰럽다. 폭발할 것 같은 정념을 안으로 삭이면서 송이째 떨어지기 때문이다. '황색 오르페우스'와 '이별'에서도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연인들의 이별이 그려진다. 작중인물들은 모두 상대를 잃은 슬픔에서 오랜 시간 헤어나지 못한다. '이승에서 사랑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망자의 원혼처럼 저승을 향해 떠나야 한다. 작중인물들은 유럽(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황색오르페우스) 남미(잉카의 여인) 인도와 충남서천(그 동백에 울다) 전주(바람꽃) 정선(가을 나그네) 등 각지를 떠돈다. 그리고 황혼녘 풍광을 배경으로 떠남과 죽음을 본다. 각 작품에서 인물들은 지나간 시절을 단순히 기억해 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깊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현재의 고통으로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작중 화자는 한결같이 희생자들을 지켜보는 '방관자'의 신분이다. '변혁의 시대'에 현장에서 숨진 원혼들을 위해 만가(挽歌)를 불러줬던 작가의 체험이 반영된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에 시달려 온 작가가 뒤늦게 만가 대신 소설로 호곡(號哭)하고 있는 셈이다. 평론가 하응백씨는 조씨의 소설을 추억 이별 죽음 여행 등의 정조가 지배하는 '황혼의 만가'이자 '비극적 낭만주의'로 규정했다. 작가는 "떠나야만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 삶의 풍경들이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