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판사와 보석..홍승기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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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기 <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honglaw@unitel.co.kr >
막 개업했을 무렵의 일이다.
남루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며느리가 구속되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탄식이었다.
사연인즉,외동아들이 장애인인 착한 아내를 얻었는데 아들이 건강이 좋지 않아 몸도 성치 않은 며느리가 용달차로 계란장사를 해서 먹고 산다는 이야기였다.
어느날 골목길 구멍가게에 계란을 배달하고 후진하며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그만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던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다.
후사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사각에 있던 아이는 불행히도 생명을 잃고 말았다.
사망사고이니 만큼 며느리는 구속이 되었고 아주머니는 물어물어 변호사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큰 슬픔에 빠진 아이 부모는 자신들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오히려 며느리를 동정하는 분위기라고 하니 쉽게 '합의'가 될듯도 하였다.
한숨만 거푸 쉬는 아주머니에게 과실이 크지 않고 사정에 참작할 여지가 있는 만큼 '보석(保釋)'을 신청하면 구속에서 풀린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설명했다.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어색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보석(寶石)을 사서 판사를 주나요?"
잠시 말을 잊었다가 혼자 쓴웃음을 웃고 말았으나,세상이 법조를 보는 시각의 단면을 깨우친 듯 두고두고 떠오르는 사연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요즈음도 판사를 만나달라는 의뢰인이 있다.
못 들은 척 딴전을 부리면 내심 불만스러워하는 눈치다.
휴가비라도 주고 오라고 우기는 의뢰인에게는 '(돈이 남는 모양이니) 선임료를 올려 받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미국의 '로스쿨'을 도입하지 않으면 나라가 당장 망할 것처럼 언론이 떠들때가 있었다.
미국의 '배심제'를 직수입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법조에 대한 질타는 더 높은 도덕률과 덕망을 갖추어 달라는 애정으로 보고 싶다.
그러나 근거없는 풍문으로 터무니 없는 공격을 해댈때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앞서 예로 들은 그 며느리는 '보석' 없이도 '보석'이 됐다.
'로스쿨'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판사는 '배심원'없이도 혼자서 그렇게 결정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