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원 < 국회월드컵특위위원장 hakwonk@assembly.go.kr > 나의 아버지는 인호장(仁虎丈)이라는 호에 어울릴 만큼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시고 언제나 단정하고 기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의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아버지! 제가 빨리 결혼해서 아버지 잘 모실게요"라고 위로하자,아버지께서는 "막내인 너까지만 결혼시키면 지하에 있는 너의 어미한테 할 일을 다 할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후 나는 결혼을 했다. 어려운 월급쟁이 생활이었지만 결혼후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생각으로 방 두칸이 붙어있는 15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전세로 얻었다. 아버지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혼인신고를 하러 시골로 내려갔다. 우편으로 신고해도 되니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당신 손으로 직접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십리나 떨어져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터에 들러 얼큰히 약주 한잔을 한 후 시골에 계신 작은 아버지 댁에 들르셨다. "이제 막내까지 장가 보내고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내 할일은 다 끝난거지"라고 말했다. 80이 훨씬 넘은 노인이 긴 안도의 숨을 쉬는 모습을 바라본 작은 아버지는 "형님,이곳 일은 다 보았으니 내일 아침 서울 자식들 집으로 올라가세요"라며 부랴부랴 서울로 올려보냈다. 아버지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면서 먼저 작은 형 집에 들렀다. 그날 저녁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손녀들의 재롱을 즐긴 후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는 영면(永眠)에 빠지셨다. 나는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형제들 중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고시를 보는 날 아침에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시고,아버지도 마지막 자식인 나의 혼인신고를 손수 마치고,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한번도 모셔보지 못한 새 아파트의 텅빈 아버지 방을 바라보면서 옛말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뭇가지가 조용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