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현에 사는 전직 간호사 나가사와 기요미(33)씨는 4년 전 집을 살 때 빌려 쓴 돈의 상환여부를 놓고 고민한 끝에 최근 한 재테크 컨설턴트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의 동갑내기 남편이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은 33만3천5백엔. 2살짜리 막내 앞으로 나라에서 나오는 아동수당 5천엔을 합치면 한달에 33만8천5백엔의 돈이 지갑에 들어온다. 반면 지출은 35만7천1백62엔으로 매달 1만8천엔이상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적자 원인을 따져 본 나가사와씨는 주택 구입때 은행과 남편 직장에서 빌린 3천5백만엔(30년 만기)이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했다. 은행대출 3천만엔과 직장대출 5백만엔의 이자율은 2.375%(변동형)와 2.625%.전체 지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1만8천8백88엔의 돈이 주택자금 상환에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맞벌이했던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 6만엔씩 썼던 식비를 요즘은 4만5천엔으로 대폭 줄였지만 주택자금은 소리없이 가계부를 축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은행과 우체국에 가족명의로 갖고 있는 저축예금은 모두 6백63만엔. 컨설턴트와 상담을 마친 그녀는 0.024%(세후)밖에 되지 않는 예금을 빨리 절반이라도 해약해 주택자금 상환에 사용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이자도 붙지 않는 돈(예금)에 매달리지 말고 생돈(이자) 나가는 것부터 줄이는게 현명한 재테크라는 것이 컨설턴트 다카하시 노부코씨의 조언이었다. 도쿄의 31세 여사원 A씨는 지난달 중순 햄버거 체인 '일본맥도날드'가 주식을 공개할 때 주저않고 1백주를 구입했다. 구입가격은 주당 4천6백엔. 공개 직후 5천엔까지 치솟았다가 17일에는 4천1백50엔까지 밀렸지만 그녀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맥도날드가 1백주 이상을 가진 주주들에게 제공하는 연간 1만엔의 공짜 식사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만엔이면 평일에 65엔씩인 햄버거를 1백50개 이상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또 주가가 제 수준을 유지한다면 예정배당금(3천엔)을 합쳐 최소 3%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정기 예금의 1년 이자율이 0.05%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보유가 엄청나게 큰 장사라고 생각한 그녀는 장기간 주식을 갖고 있을 예정이다. 1천3백86조엔 규모의 천문학적 개인금융자산을 쌓아 놓고 있는 일본에서 개인들의 최대 고민은 '돈 굴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예금 금리 0.02%, 정기예금 0.05%라는 수치가 말해 주듯 금융기관은 돈 불려주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렇다고 증시로 돈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 주가가 84년 말 수준으로 후퇴한 후 1만1천엔선 붕괴 전망까지 나오는 증시는 매력있는 투자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재테크는 불합리한 지출을 최대한 단속하는 한편 틈새 속에서 실리를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것으로 요약된다. 내년 4월부터는 예금 원리금도 1천만엔까지만 보장받을 수 있어 일본의 목돈은 초저수익과 함께 고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일본의 재테크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돈 굴리기야말로 '자이'(稅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테크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대변하듯 서점에는 연금 재산상속 등과 관련해 어떻게 세금을 한푼이라도 줄일 수 있는가를 안내하는 기사,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은 예금 4백49조엔, 우편저금 2백60조엔, 보험 및 연금 3백83조엔, 주식 1백16조엔,현금 및 기타자산 89조엔 등이 주요 명세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들 중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금융자산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금융기관을 못믿어 집안 깊숙이 숨겨놓은 이른바 '안방 예금'이다. 도쿄 최대의 일용잡화 전문점 '도큐핸즈'에서는 철제 금고가 노인 고객들의 최고 인기품목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을 정도다. 맥도날드의 주식 공개시 주간사 업무를 맡았던 다이와증권 SMBC의 한 간부는 "약 14만명의 개인이 주주로 탄생했다"며 "어디서 이처럼 많은 돈이 나왔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