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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大家] '뷰익' .. 고성능 가솔린 엔진으로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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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4년 스코틀랜드의 알브로스(Arbroth)에서 태어난 뷰익은 2살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여 디트로이트에 정착했다. 그는 1884년에 윌리암 쉴우드(William Sherwood)와 함께 "Buick & Sherwood"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연관을 주로 생산했다. 이때 에나멜을 주철 등에 영구적으로 코팅하는 특허를 획득,경기가 한창 좋았던 그 시절에 변색이 되지 않는 하얀 욕조를 생산함으로써 크게 성공한다. 1899년 오토 빔 엔 파워사(Auto Vim and Power Co.)를 설립,가솔린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한 뷰익은 1900년 가솔린 엔진과 차를 만들기 위해 "Buick & Sherwood"를 십만불에 매각한다. 1902년에는 "Buick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하고 다양한 차종에 가솔린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뷰익이 개발한 "Valve-in-head" 엔진과 함께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발명 솜씨와 기술에도 불구,별난 성격과 부족한 경영능력으로 인해 재정문제 등을 일으키며 순탄치 않은 길을 걷게 된다. 결국 1902년말 뷰익의 첫번째 차를 만들게 되지만 회사는 파산에 이른다. 1903년에 회사는 브리스코(Briscoe) 형제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회사를 재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회사는 프린트 왜건 공업사(Flint Wagon Works Company)의 제임스 하이팅(James Whiting)에게 매입 당하고 "Buick Motor Car Company"로 변경한 후,이듬해인 1904년 모델 B.(Models B.)라는 이름 하에 두번째 자동차를 생산한다. 2년 동안 53대의 차를 만들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고 또다시 인수자를 찾는 지경에 이른다. 1904년 11월 회사는 2개월간 뷰익 차를 타보고 그 성능에 가능성을 찾은 윌리암 듀란트에게 다시 매입 당한다. 이후 듀란트는 대량생산과 비용절감 등의 탁월한 경영방법으로 회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뷰익은 생산되는 차량 한대 한대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인이었기 때문에 둘 중 한명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뷰익은 52세가 되던 1906년 회사를 떠나면서 받은 회사 처분 대금 10만달러로 석유회사를 설립하였으나 실패한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벤처회사와 손을 잡고 사업을 추진했으나 그마저 실패하고 만다. 그는 1929년 3월3일 디트로이트의 직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끝으로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가 설립하여 다른 사람에게 매입되었던 뷰익 자동차는 1908년에 윌리암 듀란트(William Durant)가 설립한 제너럴 모터즈의 한 사업부가 되어 지금도 그 이름을 이어 오고 있다. 현재 약 천7백만대의 차량이 그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는 겨우 120대의 생산에만 관여했다. 손을래 (수입자동차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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