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1:18
수정2006.04.02 01:21
송남(松湳) 단사천(段泗川) 해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해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홀로 월남,1천3백여명의 직원들을 거느린 해성그룹을 일군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18세때 외가인 서울로 온뒤 5년동안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23세때 "일만상회"라는 미싱조립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그는 "현금"동원 능력이 뛰어나 사채시장을 주름잡는 재계의 숨은 실력자로 통했다.
60~70년대 웬만한 재벌치고 그의 돈을 빌려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기업경영에도 관심을 보여 54년 해성산업을 시작으로 58년 한국제지,77년 계양전기,93년 한국팩키지 등을 창업하면서 해성그룹을 키웠다.
육영사업에도 관심을 써 70년 해성문화재단과 72년 해성학원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재계에서 "현금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현금과 부동산을 보유했지만 생활은 무척 검소했다.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큰 돈을 아끼지 않는 등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신중한 경영스타일을 가졌던 그는 돈을 빌려서 하는 무리한 사업확장을 꺼리고 내실있는 경영을 추구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교회장로인 그는 건강이 악화된 올 봄까지도 휠체어에 의지해 예배에 참석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발인은 29일 오전8시 서울 중앙병원이며 영결식은 오전 9시 해성여자전산상업고등학교에서 갖는다.
장지는 경기도 장흥 선영.
유족으로는 김춘수 여사와 1남(단재완 계양전기 회장) 8녀가 있다.
(02)3010-2270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