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몇통의 편지를 썼다. 여기에 소개하는 편지는 '운명의 7월19일(99년)' 이틀 뒤에 쓴 것이다.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의 말한마디가 폭풍을 부른 다음날 밤이었다. 강 장관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회장의 재산은 (단순 담보가 아니라) 채권단이 임의처리하게 되며 이미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상실했다"고 말해 국내외에 충격파를 던졌다. 더이상 독대기회를 갖지 못한 김 회장에게 남은 마지막 수단은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것 외엔 없었다. 답장은 없었다. --------------------------------------------------------------- 대통령님께 제번(除煩)하옵고 저희 대우 부채에 대한 기한연장조치를 통해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우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매우 민감한 시기에 정부 고위인사의 발언이 보도됨으로써 국내외에서 예기치 못한 엄청난 파장이 일고있어 죄송함을 무릅쓰고 긴급히 대통령님께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대우에 대한 단기자금 기한연장조치는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초단기 차입금의 기한을 6개월간 연장하도록 하는 조치가 지난 19일 채권단회의에서 합의되었으며 저희 대우는 이를 위해 10조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부채확보에 이상이 없도록 하고 제공된 담보에 대해서는 구조조정 실패시 위임처분이 가능하도록 그 권한을 위임하기까지 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저의 향후 거취 및 담보자산의 처분과 관련한 (당국자들의)발언이 국내외에 보도되면서 대우의 구조조정작업은 전혀 예상밖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발간된 언론보도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듯이 "담보로 제공된 계열사 주식의 처분이 이루어지고 그 주식을 가장 많이 매입하는 사람이 대우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은 당장이라도 대우의 경영주체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저희와 협상을 진행해온 당사자들이 앞으로는 구조조정을 위한 사업매각 등 현안의 협의 대상이 대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는 현 상황을 시급히 바로잡아주시기를 대통령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약속한대로 회사경영이 정상화된 이후 반드시 전문경영인체제로 바꾸도록 할 것입니다. 우선은 이번 채권단회의에서 결의된 사항이 신속히 집행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시고 아울러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도와주시기를 앙탁드리고자 합니다. 1999년 7월 21일 여불비례(餘不備禮) 김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