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속아서 CEO(최고경영자)가 됐답니다" 안철수(39) 사장은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최근 코스닥 공모에서 "4백47대 1"이란 경이적 경쟁률을 기록, 일약 "황제주" 후보가 된 안철수연구소의 CEO 입에서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1995년 회사를 차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한글과컴퓨터로부터 투자를 받게 됐죠. 당시 경영을 맡으라기에 연구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한컴측이 "CEO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설득했어요. 저는 진짜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별난 컴퓨터 의사"가 벤처 CEO로 변신하기까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속아서 CEO가 된게 오히려 도움이 됐을까. 그는 원칙을 지키는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독한" 경영자가 됐다. "최근 컨텐더(The Contender)란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미국 부통령이 갑작스럽게 죽자 한 여성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목됐지만 대학교때 섹스파티를 열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고 맙니다. 여론이 불리해졌지만 그녀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어요. 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대통령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죠. 그녀는 '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 아니라 능력이라는게 제 소신입니다. 스캔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순간 부통령 자격과 사생활이 관련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정치생명이 위협받는다고 해서 저의 원칙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원칙이란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안철수연구소가 당장의 이익을 버리고 원칙에 충실했던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해 한창 벤처붐이 일었을 때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에 등록하지 않았다. 벤처 붐이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닷컴기업에 투자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도 있었지만 핵심 역량과 관련되지 않은 곳에 회사 돈을 한푼도 쓰지 않았다. 코스닥 등록시 매출액을 부풀리는 경우는 흔하지만 안연구소처럼 일부 매출을 다음해로 이연하면서 실적을 줄이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최대 백신업체인 미국 맥아피사로부터 1천만달러에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맥아피 사람들이 이 정도면 미국에서 요트를 타고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돈이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원칙에 충실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해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같은 행동은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소신 때문에 가능했다. 기업 구성원들이 모두가 따르는 공통된 가치관과 신념을 마련하고 공동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게 그가 바라는 최고의 가치다. "회사의 핵심가치를 CEO 혼자 결정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서장들에게 저마다 핵심가치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토론 끝에 직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안연구소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핵심 가치로 정했다. 그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지나치게 영혼과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돈은 기업활동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이윤도 많이 나고 영속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는 것 아닐까요" 긴 호흡을 하며 엄정한 자기 기준을 갖고 생활하는 안 사장은 가끔씩 오해를 받기도 한다. 경영 투명성을 위해 회사 돈과 자기 돈을 철저히 구분하는 그는 한때 회사 직원과 교대로 식대를 부담하며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느날 안 사장이 밥값을 내야 할 때 우연히 다른 직원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안 사장은 두 사람분만 계산했고 내막을 모르는 직원은 자기 돈으로 계산한 후 "어떻게 이럴 수가…"라며 안 사장을 원망했다고 한다. "짜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렇게 아낀 돈을 나중에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원칙으로 승부하는 안연구소는 코스닥 등록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주력 사업이었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에서 정보보안 분야로 사업영역 확대를 추진중이다. 외국업체의 공세를 물리치고 'V3'제품으로 국내 백신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는 등 탄탄한 기반을 갖춘데 만족하지 않고 이제 정보보안 컨설팅, 보안사후관리, 무선보안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05년 세계 10대 보안업체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목표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 세상의 모든 사업은 항상 리스크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점은 약속할 수 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승부수를 던진 안 사장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은 무엇일까. "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삶에는 연습이 없기 때문이지요. 제게 주어진 일, 제가 해야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과 그에 따른 책임감, 다시 말해 저를 믿어준 가족과 직원, 투자자에 대한 책임감이 유일한 버팀목입니다" '소신있는 승부사'인 안 사장은 의대에서 정통 의학을 공부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지난 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중 '브레인'이란 컴퓨터 바이러스를 접하고 백신 프로그램에 몰두한 걸 계기로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그후 7년간 의학과 컴퓨터를 함께 공부하는 강행군을 계속했고 무료 백신 보급에 앞장서다 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 --------------------------------------------------------------- [ 약력 ] 생년월일 = 1962년 2월26일 출신학교 = 부산고등학교, 서울대 의대 졸업(의학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경영공학석사) 경력 = 단국대의대 전임강사, 안철수연구소 사장(1995년), 소프트웨어벤처협회회장(1998년) 취미 = 독서, 영화감상 가족관계 = 부인 김미경씨와 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