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장관, 실언하는 장관'. 경제부처 장관들의 '입'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밝혀서는 안될 얘기를 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실무적으로 전혀 검토되지 않은 핵심 정책사안에 대해 부처의 공식 입장과 정반대되는 얘기를 했다가, 뒷수습에 비지땀을 흘리는 사례도 있다. 이런 저런 구설수를 피해 아예 입을 다물고 대외활동을 기피하는 정반대 유형의 장관도 있다. 장관들의 실언과 침묵은 그 배경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는 등 상황이 갈수록 꼬이고만 있다는 점이다. 경제시책의 최전선에 나서 있는 장관들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경제장관들에게 '홍보 부족'을 질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심 장관들이 좀더 공공 강연과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정부의 경제회복 시책을 널리 알리도록 하라는 주문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런 대통령의 '격려'를 등에 업고 '경제회복 전도사'의 선봉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각종 경제관련 회의를 주도하는 외에 일주일에 한번 이상 꼴로 외부 강연 또는 방송 출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대투신증권과 대우자동차 매각협상과 관련된 발언으로 협상에 불리한 국면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수차례 받았다. 지난 23일엔 실언도 했다. 이날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그는 "퇴직자 연금생활자 노인 장애인 등의 예금 이자에 대해 세금을 대폭 깎아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실무자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재경부는 일각에서 제기됐던 이같은 방안에 대해 이미 '수용불가'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 이날 재경부는 진 부총리 발언을 '우회적으로', 그러나 '강하게' 부인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진 부총리는 기자들에게 두번이나 해명성 발언을 해야 했다.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과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대외활동 기피형 또는 입조심형이다. 올들어 매달 평균 3∼4번 강연을 했던 이 위원장은 지난 6월20일 이후 두달이 넘도록 한번도 강연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집중 감시대상에 올랐다는 부담도 있고,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제완화 문제를 놓고 재계 등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어 나서봤자 이로울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 장관 역시 예산철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최근 석달동안 외부 강연을 두번으로 줄였다. 가끔씩 조찬강연에 나서고 있는 장 장관은 수출이 계속 뒷걸음질하고 있는 데다 속시원한 대책도 없어 말을 삼가는 분위기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요즘은 입을 닫고 있다. 하이닉스, 현대투신, 대우차매각 등 워낙 민감한 사안이 많아서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