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서 이처럼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된 일등공신은 수출 호황입니다. 때마침 불어닥친 인터넷 혁명과 IT(정보통신) 열풍 덕분이지요"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IMF 구제금융을 계획보다 앞당겨 갚게된 근본적인 동력(動力)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신경제 호황으로 대변되는 세계경제 활황이 한국을 수렁에서 건져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를 "환란"에서 건져낸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외풍"이었다는 얘기다. IMF 관리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온 일들의 '공(功)'과 '과(過)'는 경제가 또다시 시련을 맞은 요즘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98년 1백70억달러에서 지난해 2백60억달러로 늘었다. 컴퓨터는 같은 기간중 51억달러에서 1백45억달러로, 휴대폰은 14억달러에서 55억달러로 급증했다. 불과 2년만에 반도체 컴퓨터 휴대폰 세 품목에서 수출이 2백25억달러가 더 늘어났다. IT가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데 '엄청난 원군'이었다면 지금은 '엄청난 악재'로 돌변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7월 9억달러로 전년동월(24억달러)보다 15억달러 감소했다. 1년만에 무려 63% 줄었다. 컴퓨터 수출은 지난해 7월 12억달러였으나 올 7월 7억달러로 42% 감소했다. 어려운 시절 때마침 찾아들었던 IT 호황은 영원한 구세주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환란이후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경쟁력 높이기'였다. 경쟁력이 없더라도 덩치만 크면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는 산산히 깨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기업에 부채비율을 2백% 이하로 낮추도록 압박했고 대기업의 상호지급보증 관행도 없앴다. 국영기업이었던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등을 민영화했고, 노동부문에서는 근로자파견제 고용조정제 탄력적근로시간제 등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단행됐다. 수년간의 노력으로 만든 구조조정의 틀은 경제체질을 어느 정도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업경쟁력을 높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지원하기 보다는 구조개혁이라는 형식논리에 얽매여 지나치게 기업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기업투명성을 높인다는 증권집단소송제는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대규모기업집단(30대그룹) 규제완화도 부처간 이기주의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다른 나라에는 아예 없고, 해외에서는 유일하게 실시하고 있는 일본마저 순자산 대비 출자총액제한비율을 1백%로 높였는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25%를 고수하고 있다. 표학길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한국통신의 전화사업 독점체제를 경쟁시장으로 바꾸기 위해 하나로통신을 만들어 놓고도 30대그룹에 편입됐다는 이유만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독점시장에 맞서 힘겹게 싸워야 하는 하나로통신을 독점횡포로부터 보호하기는 커녕 거꾸로 각종 규제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IMF 조기졸업을 선언한 지금부터라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활력을 회복하는데 정부와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