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이 최후의 순간까지 기대를 걸었던 것은 여론이었다. 여론만 도와준다면 대우를 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2년의 대우를 이끌어 오는 동안 여론은 언제나 김 회장 편이기도 했다. 금융권 자금 회수가 본격화한 99년이 되자 김 회장은 여론부터 돌려 놓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적어도 99년 7월말까지 어떻게든 여론만 붙잡으면 회생의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우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그룹 홍보를 총괄했던 김윤식 부사장에게 특별지시가 내려졌다. 99년 4월 금감원 출입기자들을 서둘러 동유럽의 세계경영 현장으로 초청해 갔던 것도 이런 취지였다. 금감원 출입기자단은 자금난에 빠진 그룹의 지원을 받아 출장가는 것이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논란을 벌렸다. 결국 "그래도 현장에 가봐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 김 회장은 또 계열사 사장별로 특정 언론사를 지정해 밀착 홍보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테면 김창희 대우증권 사장에 대해서는 한국경제신문을 맡으라는 식이었다. 사안이 생기면 전 임직원이 한 목소리로 대우의 입장을 외부에 알리도록 사내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 구조조정본부 임원들에게는 방어적 홍보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홍보해 줄 것을 주문했다. 김 회장은 대우전자.삼성차 빅딜 과정에서 적지않은 홍보 실패가 있었다며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고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사장은 말했다. "삼성이 계속 억지 주장을 하는데 국민들이 이를 사실로 생각했고 결국 대우 때문에 빅딜이 지지부진하다는 여론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삼성 관계자들은 대우측이 성실히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협상책임자들에게 결정 권한도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삼성측은 특히 김태구 구조조정본부장이 툭하면 "회장께 재가를 받아야 한다.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불만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 라인에도 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데 노력해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 특히 경제위기의 원인이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 때문에 빚어졌다거나 지금은 지식기반 산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오해는 조직적 홍보로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적어도 대기업의 긍정적 역할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가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이런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대우 관련 재판이 진행되면서 "공"보다는 "과"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신문지면과 방송을 가득 채웠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