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회장은 1959년 농업은행에 들어가면서 은행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대구은행 제일투자금융을 거쳐 신한은행 설립에 참여했고 은행원 최고의 자리인 은행장을 8년이나 역임했다. 이젠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에까지 올랐으니 그의 43년 금융인생 역정은 절정에 이른 것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라 회장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졸업후 곧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1년간 쉬다가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고교 졸업후 라 회장은 농업은행에 들어갔다 5년정도 근무한 뒤 68년엔 대구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있던 농업은행 간부가 대구은행 창립과 함께 상무로 가면서 눈여겨 보던 라 행장을 스카우트한 것. 그는 대구은행에서 비서실장까지 승진해 당시 행장이었던 김준성 전 부총리를 모셨다. 그게 신한은행과 인연을 맺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73년4월 김준성 행장을 수행해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재일동포 기업인이자 향후 신한은행 설립의 주역이 된 이희건씨를 만난 것. 그땐 둘 사이에 특별한 교감이 없었다. 그러나 77년 재일동포들이 제일투자금융을 세울 때 김준성 당시 외환은행장은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이희건씨의 부탁을 받고 주저없이 라 회장을 천거한다. 이렇게 제일투금으로 옮긴 라 회장은 81년 신한은행 설립작업이 시작되자 실무 주역을 맡아 뛰었다. 그는 고(故) 임석춘 당시 제일투금 부회장과 함께 재일동포 자금의 국내 반입과 정부 허가, 직원 모집과 교육 등을 진두 지휘했고 드디어 82년7월 순수 민간자본에 의한 최초의 은행 설립을 성사시킨다. "서울명동의 옛 코스모스백화점에 본점(지금의 신한은행 명동지점) 문을 열던 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회고하는 라 회장은 이제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