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沿海州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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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연해주에 처음 가족단위로 이주한 것은 1863년으로 기록돼 있다.
그 해 겨울 함북 국경지역의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포세트항 북방 치신허강 계곡에 정착했다.
러시아 당국은 그들에게 씨앗과 식량을 주고 토지경작을 허용했다.
그리고 이 최초의 한인마을에 '레자노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1869년에는 연이은 대흉년에 시달리다 못한 우리 국경 지방의 농민 6천5백여명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이 대량 이주를 '경오도강(庚午渡江)'이라고 부른다.
농사꾼들이었던 한인은 이주 첫 해부터 황무지를 개척해 보리 모밀 옥수수 등 곡식과 채소를 거두어 들였다.
이 지역에서 쌀농사를 처음 지은 것도 한인들이다.
귀화하지 않으면 개척한 땅을 러시아 농민들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한 뒤부터는 황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차별 대우도 심했다.
하지만 불모지도 한인의 손을 거치면 비옥한 땅으로 변했고 수확은 풍성했다.
러시아의 통계로는 1910년 무렵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중심지인 신한촌을 비롯 대략 1백66개 마을에 8만~10만명의 한인이 연해주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1905년 이전 이주한 한인은 생활고를 못이겨 건너온 사람들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일제침략에 항거해 이주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은 연해주가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 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충북 농민들이 출자해 설립한 (주)발해농업이 연해주의 루비노니카 국영농장을 영구임대해 내년부터 농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6천6백만평의 드넓은 땅에 콩 감자 당근 오이 버섯을 재배하고 사슴농장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해주에 진출한 회사나 개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기 이주자들의 개척만큼이나 어려운 탓인지 영농의 성공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한국농민들이 계획대로 선인들이 개척한 땅에서 큰 수확의 기쁨을 얻게 되었으면 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눈물겹게 개척했던 연해주의 땅을 빼앗기고 지금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40여만명의 고려인 후예들이나 국내 농민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