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철평 < 한국무역대리점협회 회장 chin@nkt.co.kr > 나는 딸만 셋을 낳아 키웠다. 첫째는 나와 아내의 첫 결실이라 그런 마음이 덜했으나 둘째와 셋째가 태어날 때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딸 셋을 키우는 재미는 각별했다.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 아이 모두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평범하게 성장해 내 품을 떠났다. 지난달 막내가 결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딸 셋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곁을 떠났다. 첫째는 1994년에 결혼했다. 아들이건 딸이건 맏이는 자식이기 이전에 믿음직스런 동반자같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더욱이 그때는 50대 초반의 활동적인 시기여서 딸을 다른 가정에 보낸다는 서운한 감정보다는 기쁜 마음이 앞섰다. 처음으로 치르는 대사라는 생각에 약간은 흥분되기도 한 결혼식이었다. 두 살 터울인 둘째를 시집 보낼 때는 첫째의 경험을 살려 구석구석 챙겨가며 꼼꼼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 예식을 마친 직후 둘째와 눈이 마주쳤다. 둘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눈 주위를 닦았다. 그날 이후 '신부 아버지가 예식장에서 울었다'는 소문으로 놀림(?)을 당했다. 역시 두 살 터울인 막내의 결혼식장에서는 둘째 때의 기억을 살려 담담하게 결혼식을 마쳤다. 막내는 신랑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신혼여행을 떠났고 신혼여행지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고맙습니다"라는 막내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서둘러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 억제해 왔던 감정을 참지 못해 눈앞이 흐려졌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은 변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아직도 막내의 방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상장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요즘도 가끔 막내의 방에 들어가 세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더듬으면서 젊은 시절을 다시 만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