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쌀 '과잉' 어떻게 풀 것인가 .. 양승룡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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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룡 < 고려대 농업경제학 교수 >
금년도 쌀 생산이 풍년이라는 관측과 함께 쌀 가격의 하락 및 이로 인한 농민소득의 감소가 농업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풍년기근'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농업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몇해 전부터 심각하게 논의돼 왔던 문제다.
과거 10년 동안 1인당 쌀 소비는 20% 감소한 반면 생산은 거의 일정하며,지난 5년 동안 지속된 과잉생산으로 인해 재고가 적정수준 이상으로 쌓여가고 있는 형편에서 수요량을 능가하는 생산량이 어떤 문제를 파생시킬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법은 이미 예정돼 있던 정부의 약정수매 물량 이외에 미곡종합처리장과 농협에 대한 이자보조를 통한 수매량의 확대다.
그러나 이러한 미봉책은,'상처가 곪아 아프다고 하자 반창고 하나를 붙이는 격'이다.
수매의 주체가 누구든,시장에 출하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엄청난 저장물량은 여전히 가격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어려움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는 적절한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농민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 농민들에게 다시 돌아올 고통을 미곡종합처리장이나 농협으로 잠시 옮겨 놓기보다는,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재발하지 않도록 근원적으로 치료해야 할 것이다.
지난 40년 간 우리 정부의 쌀 정책은 식량안보와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해 증산정책을 추구해 왔다.
산업화와 수출드라이브 과정에서 필요한 저미가(低米價)를 위한 증산이 농정의 기조가 돼 왔다.
이는 수입자유화를 하기 어려운 정치적 성격을 가진 쌀에 관한 한 아직도 정부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증산 위주의 쌀 정책은 FAO가 권장하는 수준 이상의 재고를 초래해 엄청난 재고관리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계절진폭을 허용하지 않아 민간유통의 활성화를 저해하고,이는 다시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와 소득작목의 부재로 파산상태에 이른 농가를 위해서 증산위주의 양정(糧政)방향을 재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미곡정책의 근간이 되는 '약정수매제'가 재편돼야 한다.
전체 농업보조금의 95%를 차지하는 약정수매제는 이론적으로 증산정책에 해당한다.
쌀의 재고가 부족해 식량안보가 우려되던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약정수매제는 미곡 가격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주는 가격지지정책으로,미국의 융자수매제를 원용해 고안된 제도이다.
그러나 미국의 가격지지정책이 식부면적 제한과 같이 운용됨으로써 농산물 가격의 지지와 함께 농가소득의 안정적 지지를 도모한 것과 달리,우리의 약정수매제는 최저가격지지의 기능만을 가짐으로써 농가소득의 안정적 증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생산량의 15%에 해당하는 수매물량에만 가격지지가 적용되기 때문에 농업보조금의 대부분을 이러한 정책에 투입하는 것은 재고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약정수매제를 대신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가격이나 소득지지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약정수매제와 식부면적의 제한을 병행하거나,미국이나 일본이 이용하고 있는 부족분지불제(deficiency payment)와 같은 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약정수매제를 폐지하고 그 예산을 전용해 직접지불제를 확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선진국들의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듯,농업이 '버리고 갈 수 없는 국가의 기초산업'이라면,약정수매제나 비료가격보조 새만금사업과 같은 증산위주의 농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득위주의 농정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전환에는 농업계의 자조적인 노력 및 국민과 납세자의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
이것이 생산과잉시대의 정책당국에 주어진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sryang@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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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