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과 하이닉스는 이제 같은 배를 탔다. 채권단도 반도체산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박종섭 하이닉스반도체 사장·8월31일).하이닉스와 정부 관계자들은 금융회사들이 반도체산업을 잘몰라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이닉스 처리가 표류하고 있는 데에도 채권단의 무지가 한몫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채권단이 31일 하이닉스의 채무재조정방안을 의결하려던 은행장회의를 연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은행장회의는 컨설팅기관의 설명을 듣고 하이닉스의 기술경쟁력을 점검하기 위한 회의로 대체됐다. 최종 도장을 찍어야 하는 순간이 돼서야 실력측정을 해보자고 하는,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채권금융회사 대표는 이날 "확실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확신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지원을 하겠다는 건지 않겠다는 건지 도대체 분간이 안된다. 우리나라 수출의 5%나 차지하는 거대기업의 운명을 최종판단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에 할 수 있는 말 같지가 않다. 2차 채무조정 얘기가 나온지 벌써 1개월이나 흘렀다. 채권은행단의 대출담당 간부들은 지난 26일에야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을 방문해 현황을 점검했다. 은행들은 수천억원씩 돈을 꿔줬지만 지난 5월 1차 채무조정 때는 물론 최근까지도 공장 한 번 방문하지 않았다. 반면 외국인들은 지난 5월 DR(주식예탁증서) 발행때 1천만달러(약 1백30억원)어치를 사면서도 공장을 둘러본 뒤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국내에선 깐깐하기로 소문난 S은행이 유일하게 현장방문단을 파견한 뒤 "자신있다"며 돈을 넣었다. 어찌보면 최근 채권단의 하이닉스 채무재조정방안이 표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반도체산업은 적기에 투자하고 적기에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승패가 달렸다"(삼성전자 임원)고 한다. 6개월 단위로 기술이 한 단계씩 발전하는데 1~2개월의 투자지체는 경쟁력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채권단이 미적거릴수록 하이닉스 해법은 더 어려워져 갈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의 기술경쟁력을 이제야 점검하겠다는 채권단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며 불만을 터뜨린다. 김성택 산업부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