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는 누구일까. 얼마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은행장으로 내정된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합병은행에서 최고 15억원의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그런 김 행장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현재 받고 있는 CEO가 있다. 바로 휠라코리아의 윤윤수(56) 대표다. 그는 1997년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이 책은 샐러리맨에게 꿈과 자신감을 심어줬으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때부터 그에게 '월급쟁이의 신화' '돈버는 마술사(magic person)'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올해 그의 연봉은 22억원이다. 해외 유명기업의 CEO들이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다는 소식을 자주 접해 왔지만 국내에선 어쩐지 낯선게 사실이다. 윤 대표는 1996년 연봉 18억원 이상을 받아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휠라코리아가 한국에 뿌리를 내린지 올해로 꼭 10년이다. 가을의 초입에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지난해 11월 받은 심장협심증 수술 경과를 물어봤다. 그의 활기찬 얼굴에서 대수술을 받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심장 전문병원인 세인프렌시스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아주 좋다. 두달 만인 지난 1월 제주도에서 5일 연속 골프를 하자 주위사람들이 놀라더라" 윤 대표의 첫 직장은 해운공사였다. 수출 업무를 하고 싶었던 그는 당시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중 하나인 JC페니 한국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를 처음 생산한지 1년만에 수출 6천만달러 실적을 올렸는데 그 뒤에는 JC페니의 "진 윤(윤 대표의 영어이름)"이 숨어 있었다. 윤윤수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알려졌다. 그는 신발 제조업체 화승의 수출담당이사를 거쳐 1984년 대운무역(라인실업 전신)을 세웠다. 신발 전선 인형 등 전 품목을 취급하는 미니 종합상사였다. 서울 마포의 가든예식장 한 구석에 사무실을 임대했다. "집사람이 청소도 하고 운전사 노릇도 했다" 윤 대표는 그 때의 고생이 떠올랐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휠라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운동화에 담고 싶었던 그는 휠라의 미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던 호모 알티스와 손잡고 미국 수출에 나서게 된다. 휠라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의류 브랜드였다. 자동차 업체인 피아트(FIAT)가 1972년 휠라를 인수하면서 스포츠 레저 브랜드로 발돋움한다. 파격적인 디자인과 컬러를 도입,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휠라는 한국산 휠라운동화의 인기가 좋자 호모 알티스로부터 라이선스를 되찾는다. 휠라 본사는 윤 대표와 손을 잡아야 미국내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신발판매상들의 조언에 따라 1991년 그를 찾는다. 이 때가 윤 대표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 휠라는 브랜드를 제공하고 한국은 신발을 생산해 수출한다는 계약이 이뤄졌다. 휠라코리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휠라의 스포츠 브랜드에 신발 업계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합치면 대박이 터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적중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휠라는 미국 내에서 가장 짧은 기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외국 스포츠 브랜드중 하나가 됐다. 윤 대표 덕분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 납품되고 있는 휠라 신발의 55~60%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휠라는 윤 대표의 연봉을 고민하다가 그가 휠라 신발을 미국에 수출하면서 받은 연간 수수료 1백만달러를 기본 연봉으로 정했다. 그는 1992년에는 내수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휠라 본사는 국내 시장 규모가 보잘 것 없을 것이라며 무시했으나 첫 해에만 6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천4백73억원(수수료 포함)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천7백50억원.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에는 매출액이 2천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휠라 본사가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당연지사. 이로 인해 휠라 그룹으로부터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를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휠라그룹의 엔리코 프레시 회장이 "휠라인들이여, 휠라코리아를 보고 배우라"고 선언할 정도다. 윤 대표의 경영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초등학교때 스승이 말해준 "정직 성실 신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기업의 투명성도 여기에서 나왔다. "투명경영은 저의 철학입니다. 처음부터 투명경영을 원칙으로 내세웠습니다. 회사의 비즈니스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자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 경영의 모든 것을 공개했습니다. 사실 경영의 기본이어서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휠라코리아를 지난해 순이익 2백73위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첫 번째 힘이 바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란 말이다. 그의 이런 자신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서도 나타난다. 윤 대표는 외제차를타고 다닌다. 기업 대표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주위의 눈총을 받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윤 대표는 "떳떳하게 돈을 벌고 쓰는 것도 투명하기 때문에 외제차도 떳떳하게 타고 다닌다"고 말한다. 그가 외제차를 타고 다닌 것은 1991년부터. 볼보에서 1995년 BMW로 바꿨다. 지난해말부터는 벤츠600을 타고 다닌다. 윤 대표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크레디트가 고비 때마다 부메랑이 돼 돌아오더라"며 삶의 비법을 살짝 공개했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 --------------------------------------------------------------- [ 약력 ] 생년월일 = 1945년 9월9일 출신학교 = 서울고 한국외국어대학 정외과 경력 = 해운공사(73년) JC페니(75년) 화승 수출담당이사(81년) 라인실업 대표(85년) 휠라코리아 대표(91년) 저서 :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산다 가족관계 = 부인 이효숙(52)씨와 1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