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백중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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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은 입추와 처서의 절기다.
묵은 곡식은 동이 나고 햇곡식은 아직 덜 익어 7월을 '7궁(七窮)'이라고도 했다지만 농군은 농사일을 일단 끝내고 추수때까지 잠시 일손을 놓는다.
그래서 '어정 7월'이란 말도 생겼다.
음력 7월15일인 백중날은 이처럼 한가한 달에 들어 있는 고유 명절이다.
백중(白中,白衆) 백종(白種) 망혼일(亡魂日)등 이름도 갖가지여서 유래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 무렵이 과일이나 채소가 많이 나는 절기이므로 초기에는 수확축제였던 것이 분명하다.
뒷날 돌아가신 부모의 넋을 위로하는 망혼일로 변한 것은 불교가 성했던 고려의 유습으로 알려져 온다.
효심이 지극했던 목련존자가 1백가지 과일로 모든 부처들에게 공양을 올려 지옥에 빠진 어머니의 영혼을 구했다는 날이 이 날이다.
절에서는 목련의 고사에 따라 고려때는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온갖 꽃과 과일을 부처에게 공양하고 돌아간 부모와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해 불공을 드렸다.
불교가 탄압 받던 조선시대 초·중기까지 백중날은 각 가정에서 잘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차례를 지내는 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후기에 오면 점차 축제 가운데 잔치의 형태만 남는다.
선비들은 야유회로,농사꾼은 백중장터에 모여 하루를 먹고 마시며 토속놀이를 즐겼다.
농악놀이 투전판 씨름판 장치기놀이 등이 흥겹게 벌어졌다.
경남 지방의 경우 백중날은 '머슴의 날'이었다.
'꼼배기참'이라는 음식으로 머슴들을 대접하고 농사를 끝냈다는 뜻으로 '호미씻기 놀이'를 벌였다.
충청 지방에서는 그 해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우고 마을을 돌기도 했다.
어제는 백중날이었다.
절에서는 전처럼 재(齋)를 올리는 불자들이 붐볐지만 농촌에서는 이제 백중날은 명절이 아니다.
풍년이 들었어도 농민들은 쌀값 하락 걱정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다.
백중날의 활력은 요즘 '밀양백중놀이'에 박제된 채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농촌과 농민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