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실패학의 권유'라는 서적과 실패학 관련 강의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실패지식연구회'를 만들어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야단법석이다. 불황기의 독특한 양상일 수 있지만,어쨌든 이 바람은 한국에도 상륙한 것 같다. 과기부가 국가연구개발사업 중 실패사례만을 골라 원인을 분석,유사연구사업의 실패 재발을 방지하고 새로운 지식창출의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실패한 사례에 눈을 돌리겠다는 것 만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어 보인다. 아마 기업들의 경우는 이미 실패사례를 알게 모르게 활용해 왔을 것이다. 일본기업뿐만 아니라 미국기업도 그랬지만,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라도,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아이템이 실패했다고 그대로 사장시켜 버리는 기업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통계상 한국은 성공률이 꽤 높은 국가라는 점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결과롤 보면 우리나라 기업연구소의 연구결과 상업화율은 약 51%에 이른다. 선진국의 평균 성공률이 기껏해야 25% 안팎인 점에 비할 때 대단한 성공률이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은 또 어떤가. 정부자체의 자료에 의하면 몇몇 부처의 경우 소관 연구개발사업의 성공률이 80% 이상으로 나타난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아 기업들이 연구에 나서기를 주저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선다'는 것이 정부연구사업의 논리적 근거일진대,그 성공률이 기업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실패에서 찾아야 할 교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실패학'자체가 의미없는 국가일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이 별로 수긍하지 못한다면,아마도 '높은 성공률의 신비'부터 벗겨야 할지 모른다. 난무하는 사이비 성공판정이나 위험기피가 그렇게 만들었다면,정작 우리의 문제는 실패학의 연구대상이 될 만한 사례가 없거나,'실패할 자유'가 없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안현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