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3월초부터 11월말까지 휴일이면 와이셔츠와 넥타이 대신 야구 유니폼을 차려 입고 가족들의 열띤 응원 속에 운동장을 달리며 1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직장 야구팀이 있다. 기업은행의 직장인 야구 동호회인 '기은 야구부'(팀명 화인 뱅크)는 각종 야구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순수 아마추어 야구계의 강호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축구부와 농구부 등 실업팀이 외환위기 이후 해체되면서 기은 야구부의 사내 역할은 더욱 커졌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은행 홍보의 일익을 담당해야 하는가 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둬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기여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안고 있다. 기업은행 야구부가 생긴 것은 지난 84년 10월. 62년 창단된 실업팀이 77년 아쉬움속에 해체되면서 선수출신 직원들이 동호회를 구성, 팀 해체후 7년만에 재탄생시켰다. 이후 야구선수 출신들이 회사를 떠나거나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88년부터는 선수출신이 단 한 명도 없는 순수 아마추어 야구 마니아들이 모인 동호회로 거듭났다. 84년 창립이후 올해 8월까지 네 차례만 유니폼을 교체할 정도로 전통을 중요시하고 있다. 지난 8월1일 은행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내세운 경영비전인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을 위한 종합금융 네트워크 은행'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초우량 은행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야구부 이름을 '화인 뱅크(FINE BANK) 야구팀'으로 바꿨다. 이전까지는 스피드 뱅크(SPEED BANK) 야구팀"으로 활동해 왔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가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실시한 뒤 회원으로 선발했지만 지금은 야구에 대한 상식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력 만큼은 예전의 명성 그대로다. 지난달 열린 생활체육 서울시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으며 3월부터 진행중인 우수직장리그에서도 예선을 통과, 결선리그에 안착했다. 다음달 열리는 서울시장기 및 전국대회에서도 우승을 넘보고 있다. 88년 순수 아마추어팀으로 재탄생한 이후에도 "우수직장리그"에서 수차례 우승한 것은 물론 단 한 번도 3위 이하로 떨어져 본적이 없을 정도. 이같은 막강 실력의 비결은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면서 다진 팀워크. 화인뱅크 야구팀은 배경일(전자금융사업본부장) 단장을 중심으로 총무겸 감독을 맡고 있는 김재홍(심사부) 과장 등 모두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고참이 된 엄기환(휘경동지점) 과장을 비롯 한웅덕(관리부),김영주(심사부), 선동철(수색지점) 과장 등이 앞에서 이끌고 김준섭(종암동지점), 김용필(자금부), 전영주(구로1공단지점) 계장 등이 허리역할을 하며 팀을 꾸려가고 있다. 선수들 대부분이 5년 이상 야구를 같이하며 손발을 맞춰 지금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야구에 대한 열의까지 가세하면서 출전대회마다 강력한 후승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삿날까지 바꿔 가며 시합에 참가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결혼식까지 야구시즌이 끝나는 겨울철로 미룬 부원도 있다. 처음엔 야구가 좋아 시작했지만 지금은 기업은행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은행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그라운드를 누빈다는 사명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부원들은 입을 모았다.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직장 동호회가 예산문제로 활동을 접었지만 기은 야구부만은 부원들이 주머니를 털어가면서까지 살림을 꾸려왔다. 은행측도 경비절감의 어려움이 있지만 기은 야구부에 대해서만은 대회 참가비와 활동비 장비구입비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진 기은 야구부지만 한가지 어려움은 있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시합과 연습이 있어 가족들의 이해는 팀 운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연습장으로 소풍을 나오는 것. "처음에는 불만을 터트리던 아내와 아이들도 지금은 야구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시합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같이 응원을 나옵니다" 팀총무를 맡고 있는 김재홍 과장의 얘기다. 김 과장은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목청껏 화잉팅을 외치며 방망이를 힘차게 휘두를때면 메이저리그 선수 부럽지 않습니다"라며 "내년부터는 팀을 1,2부 두 팀으로 구성해 전 부원들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