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빚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 차환을 위한 국가보증 동의안을 제출키로 한 것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앞으로 6년동안 1백30조원이 넘는 빚을 갚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수는 더디고 없는 집 제삿날처럼 만기는 돌아오고 있어서다. 차환 발행을 통해 빚 상환 시기를 10~20년 후로 미뤄주면 두 공사가 부도를 내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이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가채무 동의안이 쉽게 처리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정부의 선택, 차환 발행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오는 2008년까지 갚아야 할 공적자금채권은 원금 81조2천억원, 이자 34조4천억원 등 모두 1백15조6천억원이다. 올 연말까지 발행될 추가 공적자금채권까지 포함하면 1백34조원이다. 연도별로는 내년에 10조원을 갚아야 하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매년 20조원 이상의 빚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이렇게 많은 빚을 제때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이 경우 금융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국가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하다. 결국 정부는 두가지 방안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갚지 못하는 금액만큼을 정부가 재정에서 대신 갚아주는 방안과 만기 도래한 공적자금채권을 차환 발행하는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안은 공적자금 회수율 예측이 어렵고 따라서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규모가 얼마인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문제가 있다. 2003년까지 균형재정을 이루겠다고 한 '국민의 정부' 최대 공약을 파기해야 하는 문제점도 걸림돌이다. 차환 발행은 재정건전화 기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당장의 문제를 먼 장래의 일로 연장시켜 놓는 방법이다. 정부가 차환 발행을 선택한 것은 당장의 책임을 미래의 과제로 미뤄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 국가보증은 고육책 =공적자금 조성용 채권 발행에 국가 보증을 붙여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만기 도래하는 공적자금채권은 모두 안전성이 1백%라고 할 수 있는 국가보증 채권이다. 결국 가산금리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증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국회나 정치권으로부터 공적자금 상환스케줄을 미리 조정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들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가산금리를 무는 것보다는 국가적으로 피해가 덜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 올 정기국회냐, 내년 임시국회냐 =당장 내년 3월말에 6천억원 규모의 예보채가 만기 도래한다. 따라서 그 이전에 국가보증 동의를 받아둬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내년 1∼2월 임시국회에 상정할 수도 있지만 그 때는 시기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