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은 1979년 개관 3개월 만에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일행을 유치했다. 방문단 규모는 6백50명에 달했다. 비상대책본부를 만들고 다른 호텔의 국빈 투숙 기록을 우여곡절 끝에 구해 리허설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덕분에 처음 치른 국빈행사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방한이 끝난 뒤 당시 판촉부장으로 방문팀을 뒷바라지했던 이영일 사장은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또 감사의 의미로 미8군에 특별 초청되기도 했다. 92년11월 방한한 러시아 옐친 대통령도 기억에 남는 국빈중 한명이다. 그는 성격이 털털하고 체격도 컸다. 당시 총지배인 자격으로 옐친을 맞았던 이 사장은 악수를 나눈 국빈 중 가장 손이 큰 사람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하루는 옐친이 휘트니스 클럽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시원한 물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평소 26∼27도로 맞춰 놓았던 수영장 물을 전부 빼내고 부랴부랴 10도 이하의 찬물로 바꿔 넣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고(故) 라빈 총리는 9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무렵에 방한했다. 이스라엘과 예수의 연관관계를 떠올린 준비팀은 환영 행사의 하나로 라빈 총리가 들어올 때에 맞춰 캐럴을 연주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스라엘 경호팀에서 찾아와 "캐럴을 연주한 의도가 뭐냐"고 따져물었다. 이스라엘의 국교(國敎)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인줄 몰라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80년대초 퇴폐풍조를 몰아내기 위해 '부인이 아닌 여자와 동침 불허' 방침을 정했을 때에도 많은 사건들이 잇따랐다. 한 미국 교포가 약혼녀와 객실에 올라갔는데 오랫동안 여자 손님이 내려오지 않았다. 프런트 직원은 투숙원칙을 내세우며 약혼녀를 밖으로 불러냈다. 프런트 직원과 기가 막혀하는 손님은 호텔이 떠들썩하도록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두 남녀는 다른 호텔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