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테러, 더이상 무고한 희생없기를"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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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수품 50주년 맞은 김수환 추기경 ]
"너무나 놀랍고 말로써 형언하기 힘들만큼 충격적입니다.
미국이 강경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만큼 제발 이번 사건이 인명손상을 초래하는 전쟁 등의 더 큰 불행으로 발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평화를 위해 어느 길이 좋은 지,어떻게 하면 테러리즘을 줄이고 화해와 평화를 이룰 지 모든 나라가 신중히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제수품 50주년 기념일(금경축·15일)을 사흘 앞두고 12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교리신학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연쇄테러사건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돼 그 애처로움을 표현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라며 "보통 테러도 아니고 건물안,비행기 안의 아무 죄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되지 않았느냐"며 개탄했다.
김 추기경은 이와 함께 지난 50년 간의 사제생활 가운데 힘들었던 일,아쉬운 점,언론개혁과 대북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등 현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심경과 생각을 폭넓게 피력했다.
-처음 사제의 길을 택했을 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이뤄졌습니까.
"50년전 사제의 품을 받기 위해 하느님 앞에 엎드렸을 때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착한 목자로 살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금 하느님 앞에 나선다면 그렇게 하지 못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 시대 최고의 어른으로 존경하는 것과 크게 다른 평가다.
하느님 앞에 보여드리고 자랑할 것보다는 용서를 구할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얘기다.
-사제로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언제나 힘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 있을 때,인권·사회문제 등으로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고 국민적 화합도 잘 안될 때였지요.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까 하고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기댈 데라고는 하느님과 양심밖에 없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고(故) 지학순 주교가 군사재판을 거부하는 양심선언을 했을 때도 '양심대로 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어떤 일이든 양심대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소외된 이,고통받는 사람들과 늘 같이 해온 동력이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며 "관심을 갖고 열정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용기가 부족해 함께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정치권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치하는 분들은 제발 좀 싸우지 마세요.
세계화 시대인 지금은 국민의 뜻과 국력이 하나로 모아져야 할 때입니다.
정치,경제를 책임진 분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오히려 흩어지고 대립하고 다투기만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말만 영수회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만나 깊이 이야기하고 협력할 때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진심으로 여야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최근 언론개혁,8·15 방북단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언론이든 종교든 개혁의 필요성은 있는데 현재 쓰고 있는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위정자가 언론인을 자주 만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참된 의미의 개혁을 어떻게 할지,잘못된 것은 고쳐달라고 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8·15방북단과 관련해서는 통일을 너무 갈망하다보니 그런 것이지 나라를 팔아먹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오래 끌지 말고 화합하는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김 추기경은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표현에 대해 "내가?"라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요즘 관심은 제발 우리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추기경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반면 힘을 합치는 게 약해 흩어지기 쉽다"면서 "틀린 것을 지적하면 받아들이고 나라가 편안해서 국민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정치인들이)인도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80이 되니 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며 "준비가 잘 돼 잘 죽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4일 오전 10시30분 명동성당에서 김 추기경을 위해 '사제수품 50주년·팔순 축하 미사'를 올린다.
이날 미사에 이은 축하식에서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김 추기경의 금경축을 기념해 엮은 화보집 을 봉정한다.
성바오로딸 수도회(02-9940-896)에서는 김 추기경의 일생을 담은 비디오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사랑'을 제작,보급 중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