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넘(ENUM)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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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안되고 e메일 주소는 모르고.뉴욕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이던 날 맨해튼에 친지를 둔 많은 사람들은 발만 굴렀다고 한다.
휴대폰은 물론 유선전화까지 먹통이 돼버린 탓이다.
전화와 e메일 ID를 모두 알아뒀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개를 적어놓는 게 번거로워 전화번호만 믿고 있다 낭패를 당한 셈이다.
조만간 이런 일이 생겨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리라는 소식이다.
전화번호를 웹주소로 바꿔주는 이넘(ENUM: Telephone Numbering Mapping)기술의 실용화로 전화번호 한가지만 알면 e메일과 휴대폰 팩스 호출기 등 다른 통신기기에 모두 연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넘은 놀라운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및 소프트웨어 업체와 통신회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제자리걸음 상태였으나 지난해 미국의 베리사인과 텔코디아 테크놀로지가 '인터넷 엔지니어링 태스크포스'(IETF)를 구성한 뒤 급진전돼 최근 시범 프로그램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넘의 기반인 번호 데이터의 소유 및 운영권을 누가 갖느냐는 점이다.
인터넷과 통신업계는 이넘을 인터넷 도메인명과 전화번호중 어느쪽 위주로 할 지를 놓고 계속 힘 겨루기중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넘이 실용화되면 전화번호나 e메일 ID중 한가지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나 기관을 찾아 연락할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말 편리할 것'이라는 타당론과 달리 '이제 개인의 사생활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경계의 소리도 높다.
전화는 물론 온라인의 익명성도 사라져 그야말로 빅브라더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발적 가입자에게만 서비스된다지만 미국 정부가 나서서 글로벌 이넘시스템 구축을 옹호하고 인터넷과 통신사가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피하기 어려우리라는 얘기다.
결국 이넘 상용화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상업성과 명분을 건 싸움중 명분론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편해지는 대신 아무데로도 도망칠 수 없는 세상이 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