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정책의 생산적 논의'라는 제목의 한국경제신문 9월12일자 시론(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마디로 경제현실과 시장논리를 외면한 주장으로 국민의 오해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경제회복을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해도 모자랄 판국에 한국에만 있는 과도한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경제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출자총액규제로 내년 3월말까지 해소해야 할 30대기업집단의 출자금액은 13조1천억원이다. 공정위는 상장주식비율 45% 등을 감안,약 4조원만이 증시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기업간 주식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제를 기초로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여 동안 정부의 개혁조치로 황제식 경영은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시장의 높아진 경영감시능력 때문에 기업집단간 결속관계는 깨진지 오래다. 비상장주식의 정상적인 매매가 막혀 있는 상태하에서는 상장주식물량을 그만큼 더 처분할 수밖에 없고,그럴 경우 증시폭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존에 유통되지 않던 고정화된 주식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질 경우 증시는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 침체장세하에서의 주식매각은 유가증권 매각 손실로 이어지고,그 결과 기업신용도 하락,회사채발행 곤란 등 기업신용불안을 증폭시킬 것이다. 결국 출자총액규제는 인위적인 증시폭락 요인으로 작용해 연기금재원을 활용한 증시의 수요진작대책도 무력화시킬 것이다. 또 출자총액규제는 민간기업의 투자위축 요인으로 작용한다. SK텔레콤 등 부채비율 1백% 미만의 우량기업마저도 초과분 해소에 고심하는 형편이라면 얼마나 비현실적인 규제인가. 투자여력 있는 대기업들이 과도한 규제에 묶여있다 보니 자생적 경기진작은 기대하기 어렵고 경기침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출자규제는 기업내 시설투자를 막지 않으니 투자제약요인이 아니라는 주장은 기업현실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글로벌경쟁체제에서는 시설확충보다 경쟁력제고가 기업의 중심과제이고,기술변화가 극심한 정보화 사회에서는 위험분산차원의 투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기업간 합작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타법인출자가 선행행위가 되어 연관투자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위원장은 출자제한과 투자간에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증표로 1995∼97년과 1998∼2000년 각 3년간의 출자총액및 설비투자 증가 통계를 제시하고 있지만,특수상황인 IMF 전후 3년간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뿐더러 IMF 직후 2년간은 부채비율 준수를 위해 유상증자가 급증한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또 출자총액규제는 구조조정정책 추진에 악영향을 미친다. 소화되지 않은 구조조정매물이 많이 쌓여있는데 출자한도 해소를 위한 매물까지 겹칠 때 수급원리상 매물은 헐값이 될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규제를 현실화하면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지분인수 경쟁에 국내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국내외 기업 간 공정경쟁을 통해 제값을 받고 처분하면 공적자금회수율도 높아지고 구조조정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과도한 출자총액규제로 국내기업이 인수경쟁에서 배제될 경우 정부의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외국기업은 시간끌기 작전과 배짱 흥정으로 특혜를 누리게 된다. IMF 위기극복 과정에서 공적자금투입과 부채의 출자전환으로 정부부문의 시장지배력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이 지배력을 빠른 시일내에 낮추는 것이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출자총액한도를 국제규범에 맞게 순자산의 1백%로 현실화해야 한다. 시장규율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이미 중천에 떠있는 해처럼 개혁의 성과는 눈부실 정도다. 반(反)시장적 경쟁정책에 발목이 잡혀 경제정책이 교란되지 않도록 재정경제부 등 관련부처는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구조조정의 성공여부는 시간과의 싸움인데 출자총액규제 개혁을 뒤로 미룰 시간이 없다. lhm@cfe.org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