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뉴HP'의 험난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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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1998년 1월.당시 세계 최대 PC메이커로 군림하던 컴팩은 경쟁업체 디지털이큅먼트사(DEC)를 96억달러에 인수했다.
그때까지 컴퓨터업계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인수합병(M&A)은 완전한 실패작으로 판명됐다.
DEC인수는 컴팩이 핵심비즈니스에 좀더 많은 전력을 쏟아부어야 할 시점에 경영관리에 혼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적인 휴렛팩커드(HP)와 컴팩의 M&A는 결국 컴팩의 DEC인수 상황을 재연할 위험성이 높다.
지난 4일 뉴욕에서 양사의 M&A를 발표할 때 칼리 피오리나 HP회장과 마이클 카펠라스 컴팩 회장은 투자은행 전문가들에게 이번 M&A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훨씬 전에 두 사람이 만나 세부적인 통합계획을 함께 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로 겹치는 생산포트폴리오와 매우 다른 직장문화를 가진 두 회사를 합치는 것은 98년 DEC인수 작업 이상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인수발표 다음날인 5일 HP 주가가 4분의1 가까이 폭락한 것도 이같은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이날 주가하락으로 HP의 시가총액은 거의 60억달러가 줄어들어 컴팩주주들이 이번 인수로 얻게 될 프리미엄을 다 날려 버렸다.
만약 HP의 주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인수자체가 취소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HP와 컴팩에는 합치는 것말고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었다.
두 회사는 정보기술(IT)산업 침체,필사적인 경쟁상황,기술적인 변천 등 세가지 요인으로 인해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HP가 살아남기 위해선 PC사업부는 물론 하이엔드(고성능) 컴퓨터비즈니스까지 접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실리콘밸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IT업체는 단순한 프린터및 잉크카트리지 제조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두 회사는 합병이 단순히 방어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피오리나는 두 회사의 힘을 합쳐 고객이 원하는 바로 그것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녀는 적재적소에 들어맞는 하드웨어와 기업들이 IT분야에 대해 보다 생산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와 솔루션을 염두에 두고 있다.
모델은 IBM이다.
IBM은 여전히 하드웨어회사로 보이지만 컨설팅과 아웃소싱 지원 등의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두 회사를 합치면 규모면에서는 IBM에 견줄만하다.
피오리나가 '뉴HP'라고 부르는 합병회사는 향후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지휘체계가 명확해야 한다.
피오리나는 우선 주주들에게 이번 합병이 의미있는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서 미국과 유럽의 반독점 규제당국자들에게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뉴HP는 하이엔드 서버분야 등에서 일부 사업을 어쩔 수 없이 매각할 수도 있다.
피오리나와 카펠라스는 그들의 양사 통합계획을 내년 상반기에 실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가장 중요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세부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원목표인 1만5천명을 어디에서 해고할 것인가,하이엔드 서버 같이 서로 겹치는 제품군들에서는 어느 회사의 사업을 정리할 것인가 등의 문제다.
뉴HP는 주요 사업분야에서 전략상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PC사업에서는 델을 누르고 세계최대 PC메이커로 올라서지만 델의 효율적인 주문생산체제에 버금가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다면 선두자리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서버컴퓨터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 37%로 단연 선두지만 델과 IBM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의 힘겨운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IT서비스에서는 두 회사의 사업부문을 통합해도 경쟁력에서 IBM의 글로벌서비스와 EDS에 뒤처진다.
이번 M&A가 성공을 거두면 명백한 승자는 피오리나가 될 것이다.
피오리나와 월가와의 밀월관계는 이미 끝났다.
경제둔화에도 불구하고 15∼17%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지난해말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피오리나가 쫓겨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번 합병으로 피오리나는 그녀가 대형회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할 시간을 2년정도 얻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면 피오리나는 DEC인수를 주도했다가 15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한 컴팩 전CEO 에크하르트 파이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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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8일자)에 실린 'Sheltering from the storm'이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