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시 다발 테러 사건 대처를 둘러싸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졸렬하고 안이한' 위기 대응이 두드러지면서 정부와 여당의 비판을 받고 있다. 14일 니혼 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의 대참사에 대해 첫 반응을 보인 것은 성명 발표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이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 테러와의 전쟁을 강조한데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성명을 단순히 읽어 내려갔을 뿐이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첫 육성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기자들에게 "(테러는)무섭네. 예측 불가능하니까"라고 밝혔을 뿐 미국에 대한 지지는 언급조차 없었다. 일본 정부가 사건 발생 이튿날인 12일 오전 소집한 안전 보장 회의에서 나온 결론에 대해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위기 관리 대응 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6개 항목 가운데 첫째 항목이 "일본인 보호를 최우선시 한다"는 것이었으며, "국제 테러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과 힘을 합쳐 대응한다"는 일본의 입장 표명은 5번째 항목으로 밀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한 소식통은 "대규모 테러 위협에 대한 총리의 인식이 희박하다"고 비난했다. 16일부터 예정됐던 동남아 순방 계획을 13일 밤이 돼서야 취소시킨 것도 상황 판단 미숙과 위기 의식의 결여로 도마위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은 심지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까지 '선수'를 빼앗긴 뒤 13일 밤에서야 겨우 성사됐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미일 동맹이라는 관계를 감안할 때 면목이 안 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의 테러 보복 지지'를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로 전달하려 했으나 미국측으로부터 "전화 받을 시간이 없다"고 거절당했다고까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에 약속한 "최대한의 지원" 등 '공헌책'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헌법 해석상 행사가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 헌법 문제가 얽혀 있어 당장 미국의 보복 지지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유효한 카드를 일본이 갖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닛케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12일 저녁이 돼 돌연 '보복 지지'를 명확히 하고 나선 것도 실은 복선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오전 미 정부로부터 "긴급 원조대를 포함한 물질적 원조는 불필요", "필요한 것은 정신적 지원"이라는 의향을 미리전달받았기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가 "말로써 강한 지지를 표명할 수 밖에 없다"는결론에 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테러 사건을 둘러싸고 실제 군사 보복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공헌과 참여 여부는 지난 91년의 걸프전 때와 버금가는 국내외 진통과 논란이 재연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y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