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테러 공격은 경기 부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부시 행정부와 의회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피해복구 및 테러범 응징에 필요한 예산으로 4백억달러를 승인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의회는 즉각 수용할 태세다. 중앙은행은 추가금리 인하를 검토중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미국의 경기회복은 상당기간 늦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번 테러사태 충격도 만만치 않아 미국이 더 이상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회복의 주축이 돼야 할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10년 목표로 개인소득세 1조3천5백억달러를 환불, 경기회복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환불된 세금을 쓰지 않고 저축하는 소비자들이 훨씬 많다. 미래를 불투명하게 보기 때문이다. 미시간대학이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잠정치)는 테러가 있기 직전인 지난 10일 올들어 가장 낮은 83.6으로 곤두박질쳤다. 소비자신뢰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리처드 커틴 교수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때 주요 제품이나 고급품에 대한 소비가 급감했다"며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뉴욕과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 전역의 쇼핑몰은 테러 직후 판매량이 현저하게 줄고 있다. 자동차 관광업종의 타격이 특히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동차 딜러들은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때 판매량이 격감했던 것과 같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자제품이나 의류판매 감소도 우려되고 있다. 소비자정보 컨설턴트인 아메리카 리서치그룹의 브리트 비머 회장은 "테러 직후 4백명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소비심리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주요 제품 구매시기를 1~2주일 늦추거나 아니면 그 이후로 미루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 크리스마스 매출은 경기침체기였던 1992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경기 부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들의 감원도 소비심리를 냉각시키는 요인이다. 9월 첫째주 첫 실업수당을 신청한 사람은 43만1천명으로 전주에 비해 3만2천명 늘었다.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은행은 이번 테러 공격으로 3.4분기와 4.4분기에 미국 경제성장률이 무려 3%포인트(연율 기준)씩 떨어져 실질적인 경기침체를 맞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도이체방크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노버트 월터도 "미국 경기가 침체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말했다. 10년 불황에 빠진 일본이나 경기회복에 역부족인 유럽,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인 아시아 국가 모두 미국이 구세주가 돼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 구세주는 지금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