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테러사건과 앞으로 있을 미국의 보복조치는 세계경제에 독(毒)으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약(藥)이 될 것인가. 지금까지 전문가들의 견해는 세계경기 회복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경제는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추가 경기둔화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국제유가와 금값이 올라가고 금융시장 혼란이 초래돼 세계경제의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분명히 이번 사건은 세계경제의 악재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미국의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과 테러집단의 맞보복으로 이어져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먼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조만간 추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릴 태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도 이번 사태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유가급등을 막기 위해 원유공급을 늘릴 의사를 시사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 국민들의 정책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점은 앞으로 미국경제 향방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올들어 금리인하와 세금감면책을 추진했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미 국민들의 정책반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 따른 피해정도가 컸던 점을 감안하면 피해복구에 따른 부양효과도 의외로 클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반드시 암울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최근처럼 경제활동에 있어서 심리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를 독처럼 암울하게 받아들일 경우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은 의외로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과 조만간 있을 테러보복이 세계경제의 약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과거 비슷한 사건을 당한 후 세계경제 모습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1929년 대공항 당시도 이번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팍스 브리태니아(Pax-Britannia)'를 실현한 영국경제가 붕괴되면서 세계경제는 극심한 불황국면에 빠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세계 각국들은 이기주의로 치달으면서 보호무역의 파고가 높아져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세계 각국들은 금리인하와 대대적인 정부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모색했으나 경제주체들이 경제 앞날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낌에 따라 의도했던 효과는 얻지 못하고 불황국면이 장기화됐다. 이런 불황의 고리를 차단했던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은 단기적으로 추가 경기침체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우선적으로 그동안 적체된 과잉상품을 처분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군수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각되면서 세계경제가 장기불황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 60년대 들어서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베트남 특수로 미국경제 역사상 최장의 기간으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존슨 호황시대'가 열렸다. 90년대 들어서도 걸프전쟁을 통해 80년대 호황과정에서 누적된 과잉공급 문제가 해결되면서 미국경제가 91년 3월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10년에 걸친 장기호황을 누리는 초석이 됐다. 이번에도 10년간 장기호황 과정에서 재고가 누적된 상태다. 군수산업의 경우 90년대 들어 국제저유가 추세가 지속됨에 따라 재정이 악화된 중동국가들의 수입이 줄어들어 재고가 적체된 상태다. 특히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지탱시켰던 신(新)경제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재고누적으로 미국경제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했다. 결국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번 사태가 미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을 해결해 줄 가능성도 높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미국은 '역발상 경제(reverse economy)'의 이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이번처럼 대외환경의 악재가 나타나면 우리 경제는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이번 사태로 주가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고 각종 매체들이 당사국인 미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는 점이 대표적인 입증사례다. 이제부터 우리 경제도 역발상 경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내부적인 역량을 길러야 할 시점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