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전 조세문화의 조건..이만우 <고려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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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이란 단어에 거부감이나 회피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프랑스에서는 한때 교도소를 방불케하는 조그마한 창이 몇개 있는 주택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이는 그 당시 프랑스의 재산세가 창문의 개수에 따라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조세관서에서는 문이 많은 주택을 가진 사람은 고소득자로 간주해 고액의 세금을 부과했기에 교도소형 주택의 난립을 초래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파리의 뒷골목에는 아직도 당시의 가옥이 몇채 남아 있어 여행객들로 하여금 그때의 상황을 느끼게 한다.
미국에서 맥주의 생산지로 유명한 밀워키를 방문한 사람이면 금주령이 내려졌을 당시나,과다한 주세의 부과로 술 소비를 억제했을 당시의 주점이 관광명소로 소개되어 발길을 옮기게 된다.
금주령을 피해서,과다한 납세를 피하기 위해 서점으로 가장한 술집을 애주가들이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세는 어떠한 가옥에서 주거하며 어떠한 장소에서 어떠한 업종의 사업을 할 것인가, 일정한 소득을 소비할 것인가,아니면 미래소비를 위해 저축할 것인가,지하경제를 통해 생업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떳떳이 생업을 유지할 것인가 등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조세제도를 입법화할 때 다양한 정책효과를 배려하려고 하다 보면 세제가 복잡해져 누더기 세제가 될 뿐 아니라 세제가 추구하는 공평과 효율의 철학이 훼손되게 마련이다.
또한 징세행정을 수행할 때에도 국가 세입원천으로서의 순수한 입장에서 과세하지 않으면 납세자들로 하여금 탈세와 탈법을 조장할 유인을 제공해 세정의 신뢰성을 저하시키기도 하며,건전한 조세문화의 창달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과거에 세금은 부동산투기 억제나 사치성 소비억제,고액과외 금지 등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권위주의 정부시대에는 야당을 후원하는 기업인들이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는 등 정치적 동기에 의해 과세가 활용되어 세정의 신뢰를 훼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언론사의 관행적 탈세행위를 개선하고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는데,주요 일간지의 사주들이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한 건전한 경영의 유인에는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다수 국민이나 언론인들은 그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는 의구와 회의적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언론인들은 몇몇 비판 언론사를 순치시키기 위해 세무조사를 시행한 것으로 믿고 있다.
세무조사의 기준이 모든 언론사에 공평하게 적용되었는가에 대한 불만 또한 높다.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죄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형사관계법의 원리가 세정에도 적용될 경우 공평과세가 정착될 것이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세정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인 납세에 대한 인식은 지도자나 정치권의 행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일찍부터 발달한 영국 미국에서는 시민정신 또한 투철해 탈세를 간음처럼 수치스럽게 간주할 정도로 납세의식이나 조세문화가 비교적 잘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에 라틴문화권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거 봉건 영주나 폭군,독재자들이 압정의 수단으로 조세를 악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신성한 납세의무에 대한 건전한 시민정신보다 자기 방어의 본능에서 재산을 은닉하고 탈세를 예사로 생각하는 국민이나 가정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세제도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또 만능이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어느 정부의 어느 정책입안자나 정치인도 세금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을 갖지 않을 때 공평과세가 확립될 수 있으며,건전한 조세문화가 꽃을 피우게 됨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mw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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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