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揚州와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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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의 고향은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다.
양쯔강 북방,대운하 서쪽에 있는 이 도시는 589년부터 양저우라고 불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대(唐代)엔 강남의 물자를 운하로 북송하는 중심지이자 국제무역항으로 번창했던 곳이다.
청대(淸代)엔 독창적 화법의 문인화를 그려 '양저우팔괴(八怪)'로 불렸던 화가들을 배출한 예술의 고장이기도 하다.
한국과 양저우는 신라 때부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8세기 중엽 이후 당에 이주한 신라인들은 양저우를 비롯 동해안에 자치구역인 신라방을 이루고 살았다.
고려때는 무역관인 고려관이 이 도시에 설치돼 있었다.
양저우는 또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崔致遠)과도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12살이 되던 868년 당으로 유학,18살에 타국인이 응시하는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해 처음 현위로 나간 곳이 지금의 양저우였다.
그후 그의 문명을 떨치게 한 것은 황소의 난 때 토벌총책임자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 일하면서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격문을 읽던 황소가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는 얘기는 중국에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이 격문과 시들을 지은 곳도 지금의 양저우에서였다.
귀국후 공문서와 시 60편을 뽑아 엮은 것이 '계원필경(桂苑筆耕)'20권이다.
이 책은 당의 저명한 저술과 함께 '신당서'에도 소개돼 있다.
양저우시가 오는 10월15일부터 1주일간 한·중 경제·문화교류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양국의 연예인공연 기업박람회 외에도 최치원학술대회와 사료전시관 개관 등의 행사도 마련돼 관심을 끈다.
양저우대학은 지난 수년간 최치원의 행적과 문학을 연구하고 유적을 찾아 표지석도 세워 놓았다는 소식이다.
장쩌민 국가주석은 95년 한국방문 중 국회연설에서 '계원필경'을 예로 들면서 과거 문화교류를 통한 양국 우호관계를 역설해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결국 고향의 옛 얘기를 했던 셈인데 당시 그 내용을 안 사람이 몇이나 됐을지 의문이다.
기업과 자본유치를 위해 1천여년 전 타국 인물과 유적까지 탐구하는 중국인의 주도면밀함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