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세계 각국이 잇따라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그 속도와 범위에 대한 신중론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테러 대참사 주범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전쟁을 개시하거나 아프가니스탄 외에 다른 아랍권 국가로 테러 전쟁을 무차별 확산했다가는 오히려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18일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테러 대책을 논의할 예정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앞서 가진 회견에서 "우리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백지수표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다. 국가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신중한 입장을 취할 뜻을 시사한 것. 알라인 리처드 프랑스 국방장관도 "전쟁은 반테러정책의 한 수단일 뿐이며 불안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루돌프 샤르핑 독일 국방장관도 "우리는 전쟁에 직면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독일 헌법은 군사적 움직임을 취하기 앞서 의회의 사전 동의를 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독일 군 소식통은 독일의 지원이 의료 및 수송부문에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입증된 사실에 기초해 군사보복에 대한 결정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이 중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전통적인 동맹국이었던 아랍권의 반발을 촉발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안토니오 마르티노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미국의 공격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전쟁'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이번 테러는 국가간 분쟁이 아니며 이탈리아 군은 어느 곳에도 파병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군사 전문가인 프랭크 움바흐는 "유럽에는 부시 대통령이 대중의 압력에 떠밀려 과잉보복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권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의 테러응징 노력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군사행동에는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랍권 내 대표적인 미국 우방국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이 대참사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데 성급해서는 안된다"며 "특정 국가들이 동맹군을 구성해 특정 국가를 공격하는 데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유엔에서 테러 관련 국제회의를 개최해 구속력 있는 결의문을 채택 실행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군하도록 미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만 펴고 있다. 테러범 응징에는 세계 각국이 원칙적으로 지지를 보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의 성급한 과잉보복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상의 처방은 테러망에 대한 부단한 추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