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석 < 프리챌홀딩스 회장 moses21@freechal.co.kr >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정신력이란 식민지와 전쟁의 상흔을 한강의 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것은 또 개개인 능력의 척도이자 일상화된 삶의 규범이기도 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꼭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삶의 격문이었다. 최근의 디지털혁명은 정신력의 정의에도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정신력은 더 이상 자기 중심적인 오기나 집념일 수는 없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구체적인 결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립의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채워줄 수 있는 어울림의 힘이다. 고객의 욕망을 읽고 이를 찾아낼 수 있는 마음과 기술이 없다면 무에서 유는 창조될 수 없다. 정신력은 현실과 분리된 관념의 영역에 존재하는 힘이라는 생각은 수정돼야 한다. 폴 볼커 전 미국연방준비은행 총재에 따르면 금융 자본시장에서 인식은 곧 현실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자본시장에 대한 위험 산정은 곧 투자환경이 된다. 즉 정신과 물질은 현실을 구성하는 동일한 과정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정신력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불굴의 투지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식이 곧 현실인 시대의 정신력은 과제가 수행되는 환경 자체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이며 유연한 능력에 더 가깝다. 정신력은 행동을 촉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의 능력 그 자체로 변화됐다. 기업의 활동영역은 네트워크라는 흐름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구상과 실행이 구분되지 않는다. 더 이상 생각은 행동을,행동은 생각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정신력은 기다림이 아니라 속도가 된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동일한 현상도 달리 경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먹기에 따라 현실이 달라질 수 있게됐다. 정신력이 정신이라는 고립된 영역에서 나와 마음이며 인식이며 행동으로 풍요로워졌듯이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현실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정신력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