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조기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던 정부가 조기 민영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싼 값에라도 팔고 보자'로 입장 정리를 끝냈다. 오페라본드 발행 방침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동안 정부는 "증시 사정이 안 좋고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의 정상화 실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지금은 좋은 값을 받기 어렵다"며 '국영화된 은행'의 주식 매각시기를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뤄왔다. 그때쯤이면 주당 2천원에도 못 미치고 있는 '국영은행'들의 주가가 액면가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여론이 좋지 않았다. 지난달 한국에 온 신용평가기관 S&P의 국가신용등급팀은 한국정부 관계자들에게 "신용등급 전망을 한 단계 낮출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을 빨리 민영화하고 대우자동차 현대투자신탁증권 등도 제때 매각해 개혁의지를 보일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은행 조기 민영화로 돌아선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S&P의 요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소유 금융기관을 조속히 민영화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의 지시도 크게 작용했다. ◇ 제값 받을 수 있나 =조흥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2조7천억원을 전액 회수하려면 오페라본드의 교환가격이 액면가(5천원) 이상이어야 된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이보다 높아야 한다. 3조4천8백억원이 감자됐기 때문에 총 투입액 9조4천4백22억원을 모두 회수하려면 주당 7천9백23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지금으로선 이 정도 값을 받기가 어렵다는게 증시 관계자들의 분석. 조흥은행 주가는 19일 현재 주당 1천9백20원이다. 오페라본드의 프리미엄률은 통상 10∼30%인데 가장 높은 할증률을 적용해도 교환가격은 2천6백원이 안된다. 하이닉스 등의 잠재부실 요인도 부담이다. ◇ 민영화라고 할 수 있나 =오페라본드를 산 사람이 주식교환을 청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조흥은행의 주식이 매각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매각 가능성이 있는 것뿐이다. 주식교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 오페라본드 발행은 예금보험공사가 은행 주식을 담보로 비교적 저리의 자금을 빌려쓰는 효과밖에 없다. 본드 매입자가 전액을 주식으로 바꿔가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민영화, 즉 경영권이 민간인에게 넘어가는 수준의 민영화는 아니다. 조흥은행 주식의 교환가격이 주당 5천원이고 5억달러 전부가 이 은행 주식으로 교환된다고 가정할 경우 확보가능한 지분율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물량 19.5%와 합해도 40%에 못미친다. 결국 이번 오페라본드 발행은 국영은행 주식의 본격 매각에 앞서 '시도'를 해보는 수준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 --------------------------------------------------------------- [ 용어풀이 ] ◇ 오페라본드 =교환사채(EB·Exchangeable Bond)의 일종.E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발행자측이 미리 지정한 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일반적인 EB는 교환대상 주식이 한 종류인데 이것이 두 종류 이상인 것을 오페라 본드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