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경쟁력이다] 제2부 : (8) 최승옥 <기보스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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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말이 휴지처럼 촘촘히 감겨 있는 철강 코일이 줄줄이 풀려나오며 일정한 규격으로 '뚝뚝' 끊어진다.
빈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듯 대형 기중기가 육중한 기계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철강 코일을 생산라인으로 운반해 낸다.
한낱 쇳조각에 불과한 철강 코일을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용도에 맞게 자르고 다듬으며 생명을 불어넣는 공정이다.
경기도 시화단지내에 위치한 기보스틸.
현대하이스코가 지정한 경인지역 최대의 코일서비스센터다.
10t 무게의 철강코일 50개를 하루만에 '뚝딱' 해치워 버리는 이 회사의 최신식 설비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은 이 거친 생산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이 여성이라는데 한번 더 놀란다.
반평생을 철과 동고동락해 온 최승옥 사장.
철강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라면 누구나 한번 꿈꿔 본다는 코일서비스센터를 소유한 국내 유일의 여성이다.
업계 최초의 여성 영업부장과 전문경영인을 지냈던 그는 이 분야에선 신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화려한 경력뿐만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일군 성공 신화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자기 몸무게의 수백배에 달하는 철강코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철의 여인' 최 사장의 인생 전편은 거친 현장을 직접 뛰며 흘린 땀방울로 얼룩져 있다.
한우와 더덕으로 유명한 강원도 횡성.
60년대만 하더라도 몇시간을 걸어야만 도회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그곳이 최 사장의 고향이다.
마을의 엄한 서당 훈장이자 시대를 앞선 지식가였던 아버지는 항상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머리에 지식을 넣어줘야 한다'고 강조했을 만큼 교육열이 높았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막내둥이 울보였던 그를 '큰 인물이 되어라'며 서울로 떠밀어 보낸 것도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최 사장이 철강업계에 투신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졸업 후 친구가 다니던 철강회사에 놀러간게 그의 운명을 1백80도 바꾸어 놓았다.
활달한 성격의 그를 눈여겨 본 철강가공업체 세일철강의 권태혁 사장이 그녀에게 일자리를 권유했다.
당시만 해도 철이 그의 인생 전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깔끔한 업무처리로 여러 부서를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던 그에게 영업부서로의 업무 권유가 들어왔다.
밖으로 뛰어다닐 수 있는 부서란 생각에 그냥 'OK' 해버렸다.
하지만 가녀린 신참 여사원이 거친 남성들과 영업일선에서 직접 부딪치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그녀를 피하고 두려워했던건 오히려 거래처의 남자들이었다.
남자 영업사원이라면 하루에 끝낼 일을 사나흘씩 매달리며 처리해 내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을 불평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거래처 사무실 문을 다시 두드렸다.
이런 최 사장의 노력에 거래처 사람들도 마음을 열었고 그를 여성이 아닌 사업파트너로 인정해 주었다.
이시절 최 사장은 한달이 못돼 새구두를 사야할 만큼 업무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불규칙한 식사로 생긴 위염도 그때의 훈장이다.
두 세계단씩 층계를 뛰어오르는 버릇도 이 시절의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이 업계 최초로 여성 영업부장 자리에 오르게 된 밑거름이 됐다.
발품을 팔며 쌓아간 사람들과의 끈끈한 인연은 자신의 사업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92년 입사 15년째.
어느 정도 일에 관록이 붙고 그의 명성이 업계 전체에 자자했을때 그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했다.
동암철강(현 삼신철강)의 초대 전문경영인으로 취임한 것.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일에 매달렸다.
일주일의 절반을 공장에서 밤샘하며 사업기반을 다졌다.
그만의 특화된 영업 노하우로 취임 첫해만에 이 회사를 흑자기업으로 일궈냈다.
자신감을 얻은 최 사장은 지난 99년 현대하이스코의 경인지역 코일서비스센터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사업체를 한번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철강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꿈꿔 보지만 아무나 그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코일서비스센터 사장.
쟁쟁한 재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다.
물론 남성들만의 점유물이기도 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 사장은 지원했고 결국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 하이스코로부터 코일센터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평생을 철과 동고동락해온 그의 25년 경력을 현대측이 높이 산 결과였다.
기보스틸은 현대하이스코로부터 받은 냉연코일을 가공해 주로 기아자동차와 국내 가전업체 등에 판매하고 있다.
문을 연지 2년만에 대구 울산 등 설립 10여년이 넘는 타지역 코일센터의 매출에 버금가는 사업실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은 2백54억원.
올해 7백억원의 매출이 무난할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월 가공능력은 3만여t.
넘치는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지난 5월에는 최신 설비로 무장한 제2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기보스틸은 고객이 구입한 원자재 코일을 요구대로 가공해 주는 임가공서비스와 형강류 철근 강관 등 건축자재류의 유통사업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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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ccess 5 ]
(1)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되라
(2) 매순간이 기회의 연속이다
(3) 꿈을 크게 가져라
(4) 사소한 약속도 철저히 지켜라
(5) 맡은 분야서 항상 최고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