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일을 맡은 사람이 본 뜻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 일은 빗나가고 만다. 요즘 증권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식 안팔기 운동'이 그런 예다. 미국의 대형 테러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은 "기관이든 개인이든 가급적 주식을 팔지 않고 한 주라도 더 사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재정경제부는 즉각 닦달에 나섰고 증권·투신사 사장들이 모여 주식 순매수를 결의했다. 형식은 자율결의지만 내용은 강제적인 것이나 다름없다. "매일 매일 주식을 순매수하는지 체크하고 이를 어기면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증권가 사람들은 그 조치가 무엇인지를 잘 안다. 순매수 지침을 어기면 기관들로 하여금 해당 증권사에 주식주문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투신사엔 국민연금 같은 것을 맡기지 않는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더욱이 '괘씸죄'라는 미운털까지 박힌다는 것도 과거 경험으로 익히 안다. 그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니 순매수하는 흉내만 낼 뿐 주식을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자율결의를 한 사장들은 주식을 사고 파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순매수 지시를 내려보내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자산운용의 성과가 나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이는 결국 펀드매니저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투신사가 굴리는 자금은 회사돈이 아니라 엄연히 주인이 있는 고객돈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순매수 결의를 한 사장들도 일이 잘못되면 경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용감하게 순매수 지시를 내릴 형편도 못된다. 큰손인 국내기관이 주식을 팔지 않는다면 주가를 받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차원의 일이다. 현실은 다르다. 국내기관의 상장주식 매매비중은 8~1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손이 더 큰 외국인이 버티고 있고 통제가 불가능한 개미군단도 있다. 주가받치기의 효과가 의문시 될뿐더러 자칫 후유증도 우려된다. 기관이 팔짱을 끼기 시작하면 거래가 줄어들고 시장활력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또 순매수라는 족쇄를 차고 있는 국내기관은 그것이 없는 외국인과의 대결에서 몸놀림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매도시장도 엄연한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식 공매도,선물이나 옵션의 매도포지션,현물과 선물을 결합한 매도차익거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런 매도시장은 과열된 매수세력이 일으키는 거품을 걷어내고 매수세력과의 접전을 통해 적정가격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뜨거운 싸움만이 시장의 활력을 창출한다. 프로그램 매매도 현물과 선물시장의 가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시장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프로그램 매매마저 순매수 결의에 포함시켰으니 어이가 없다. 시장참가자들의 눈에 주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보이면 매수세는 벌떼처럼 등장하게 된다. 그것이 시장의 복원력이다. 주가 폭락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할 상황이 아니라면 정부도 "경제가 망하지 않으면 시장은 결코 붕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버려선 안된다. 과거에도 기관들로 하여금 순매수 결의를 종용해봤고,증안기금을 만들어봤고,특별융자까지 해봤지만 별 효과없이 금융회사의 부실만 키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정부가 잘 알지 않는가. 시장참가자들을 얼러서 주가를 움직이려 하지 말고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따를 수 있도록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를 보이고 실천하는 일이 '주식 안팔기'운동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윗분의 지시라면 본 뜻을 소화하기보다 무조건 따르고 보는 굳어 있는 사고방식도 버려야 한다. hu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