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백신업계에 비상이 걸린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일 때까지 대다수 직원이 아예 퇴근도 하지 못한다. 경쟁업체보다 백신을 빨리 개발해 기술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문의 전화를 받고 피해를 당한 시스템을 복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백신업체 종사자들의 몫이다. 초특급 바이러스 '님다'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국내외 백신업체들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다. 지난 18일 오후 국내에 바이러스가 유입된 후 안철수연구소 하우리 등 토종 백신업체들은 곧바로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19일 오전에는 하우리가,이어 오후에는 안철수연구소가 백신을 만들어 내놓았다. 대형 외국 업체들보다 초기대응이 빨랐다. 덕분에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만으로도 전파되는 강력한 님다 바이러스를 조기에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냈다고 해서 국내 업체의 여건이 외국 회사에 비해 좋은 것도 아니다. 국내 업체의 연구개발 인력은 30∼50명선이지만 외국업체는 적어도 1백명 이상이다. 매출 규모나 연구비 등의 격차도 크다. 상황이 열악하지만 토종 업체들은 우리나라 백신시장의 70%이상을 장악했다. 통신 장비,기업용 솔루션 등 상당수 분야에서 외국업체에 안방을 내준 상황을 감안하면 백신 시장의 장악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속도 경쟁을 벌인 탓인지 부작용도 나타났다. 바이러스를 치료한 뒤 일부 응용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거나 파일이 삭제된 사례가 나온 것이다. 토종 업체들은 상대방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며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외국 기업들은 쾌재를 부르며 백신판매에 열을 올렸다. 정보보안분야만큼은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집 열쇠를 평생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 백신업체들은 외국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골리앗 같은 유수의 외국 업체에 뒤지지 않는 제품을 개발해야만 생존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전산망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 하우리와 안철수연구소가 서로를 격려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남국 IT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