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생한 미국에서의 동시다발적 테러는 규모나 방법에 있어 우리 모두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미국은 테러를 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기 위해 그가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 주변지역에 육·해·공 군사력을 속속 투입하고 있다.이미 공격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아랍국들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미국 국민들의 비등하는 응징여론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할 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미국의 공격에 의해 '전면적인 중동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워지고 있던 우리 경제는 미국 테러사건으로 더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크루그먼 같은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테러 사건을 계기로 IT산업이 활력을 되찾아 미국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인 교수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적어도 1∼2년 늦어질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걸프전 등 과거 중동전이 있을 때마다 유가가 급상승한 경험으로 볼 때,미국의 대규모 공습과 전쟁의 장기화는 원유생산과 수송체계에 애로를 가져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수요와 비축원유수요 급증으로 유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선진국들의 투자 및 소비수요는 물론 한국의 투자·소비수요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지난 1974년이나 1980년 1,2차 오일파동 직후에 경험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주가와 한국의 주가가 테러사건 이후 폭락한 것은 심리적 요인도 있겠지만,이러한 불안정적인 요소들이 모두 시장참여자들을 통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부도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고,다른 한편으로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국내 경제체제의 점검에 착수하고 있다. 증권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안정화대책기금을 마련하고,기관투자가들의 일방적 매도를 자제하는 조치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단기적 조치들로서 앞으로 미국이 장기적인 전쟁돌입에 임하는 경우,우리 정부의 선택 가능폭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대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현안들을 조속히 마무리지음으로써,우리 스스로가 창출해온 불확실성이라도 제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현안으로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현안은 너무 오랜 시간 결정을 미뤄 온 결과 그 동안의 기회비용이 엄청난 규모로 누적돼온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1일엔 대우자동차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물론 매각에 따른 특혜 시비와 불평등계약의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대우자동차의 엄청난 부채규모를 고려하면,대우자동차를 가장 잘 아는 GM이 인수함으로써 브랜드를 유지하고 협력업체나 고용의 승계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이닉스 문제도 채권단에 의해 자율 결정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벗어났다. 따라서 정부는 하이닉스를 확실하게 지원해 '살릴 것인가' 아니면 충격을 감수하면서라도 '도태시킬 것인가'를 빠른 시일내에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은 국내 여객운송·교통지원시설·통신망 및 전력·가스 등 기타 에너지 시설의 안전강화 등에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3%대로 하향 조정하고 있으나,이에 대비하는 경기대응책은 극히 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크게 줄어들고 있는 수출을 감안할 때,유류 절약 조치 등을 통해 불필요한 수입수요의 억제로 국제수지를 방어해 나가는 것이 원화 가치 및 물가의 안정을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최선의 정책일 것이다. pyohk@plaza.snu.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