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45)이 10월4일 방한, 2박3일간 머문다. 취임후 한국 등 아.태지역에 대한 첫 공식 순방이다. 그는 지난 7일 잭 웰치 전 회장(65)의 뒤를 이어 제9대 GE 회장이 됐다. 회장이 된지 겨우 보름여, 이 짧은 기간에 거대한 파도가 그를 덮쳤다. 미증유의 미국 테러 참사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와 전세계 주가 대폭락 사태가 이 신참 CEO(최고경영자) 앞에 놓여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량한 기업인 GE도 이 폭풍 속에 휩싸였다. 이 폭풍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그는 지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지난 21일 뉴욕 증시는 두 사람 때문에 울다가 웃었다. 둘 다 CEO였다. 한 사람은 '미국주식회사'의 CEO인 조지 부시 대통령, 다른 사람은 GE의 새 CEO 이멜트 회장. 둘 사이에는 공약수가 있다. '세계 최대' 주식회사의 CEO라는 점이다. 전자는 연매출(국내총생산)이 10조달러인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의 CEO이고, 후자는 주식 시가총액(약 3천1백억달러)이 세계 최대인 GE의 CEO다. 그날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개장하자마자 3백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전날 밤 부시 대통령은 의회연설에서 대(對) 테러전쟁을 선언하고 국가 수호를 다짐했다. 이 연설로 전쟁 불안감이 커지면서 개장벨과 함께 주가는 폭락세로 치달았다. 그러나 낮 12시께 다우지수의 낙폭이 1백포인트대로 좁혀졌다. 이멜트 회장이 증시애널리스트들 앞에 등장, GE의 모든 투자자들에게 비전과 자신감을 심어준 덕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그는 월가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시작했다. GE의 CEO가 된지 2주일 만에 이뤄진 첫 신고식이었다. 그는 테러 불황에도 불구, 올해와 내년 GE의 두자릿수 성장을 자신했다. 이 소식은 증시의 호재가 돼 뉴욕 주가의 방향을 아래에서 위로 돌렸다. '웰치 없는 GE, 흔들리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멜트 회장의 기업설명회를 이렇게 평가했다. 저널지는 세 단어로 압축해 그를 표현했다.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easy but firm)" 자신에 찬 모습으로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웠다는 분석이었다. 9월7일은 세계 경영사에서 한 전설이 가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그날 이멜트 회장은 당대 최고의 경영인 잭 웰치 전 회장으로부터 GE 지휘봉을 넘겨 받았다. 사람들은 '웰치 없는 GE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멜트 회장이 잇몸의 역할을 제대로 할까, 세상이 이멜트 회장에게 던진 불안한 의문이었다. 이 불안은 그러나 기우였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윌밍턴투자신탁의 애널리스트 짐 비터는 이멜트 회장을 격찬했다(AP통신). "사람들은 그로부터 GE의 미래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 비전을 다시 확인했다. 이멜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로이터통신도 '이멜트의 리더십을 발견했다'고 논평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GE에 또 하나의 전설이 시작됐다'는 촌평을 냈다. 이날 다우지수는 1.7% 떨어졌지만 GE 주가는 3.1% 올랐다. '이멜트 효과(Immelt Effect)'였다. 그는 올해 GE의 주당 순익이 작년보다 11% 늘어난 1.41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테러 사태로 순익이 좀 줄겠지만 두자릿수 증가율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GE 회장으로서 그의 첫 과제중 하나는 웰치 전 회장의 후광을 걷어내는 것이다. 평소 이에 대한 그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가 기업설명회에서 드러났다. "지난 2주일간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더 이상 잭(웰치의 애칭)에 대해 질문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웃으며 던진 농담이었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그는 자신을 후계자로 뽑아준 웰치 전 회장과의 '발전적 차별화' 발언을 몇번 했다.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잭보다 더 급진적(radical)으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집무실을 웰치 스타일로 꾸미지 않겠다고도 했다. 일과 관련 없는 호화 집기나 장식물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웰치 전 회장은 값진 그림들을 벽에 걸어 놓는 등 집무실을 안락하고 화려하게 꾸몄었다.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웰치 전 회장과의 연(緣)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그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후계자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이멜트 회장은 3천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31만3천명의 GE맨중 1%도 안되는 소규모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 20년 전 무자비한 직원 해고로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웰치 전 회장의 대규모 감원 전략을 승계하겠다는 숨은 뜻이 들어 있다. 사세 확장도 웰치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이멜트 회장은 취임 직후 최우선 경영전략이 사세 확장을 통한 성장 가속화라고 밝혔다. 규모 확대에 한계를 두지 않고 필요한 기업들을 인수합병하겠다는 것. 규모의 경제를맡璿玖?이익도 저절로 따라온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웰치 전 회장도 20년간의 회장 재임중 수백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했다. 이멜트 회장은 얼마 전에 벌써 헬러파이낸셜이라는 금융업체를 53억달러에 사들였다. 기업설명회에서도 "수백억달러의 사내 유보금을 GE 주식을 매입하고 외부 기업을 인수하는데 쓸 작정"이라고 언급했다. GE가 아무리 우량한 주식이라고 해도 테러쇼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테러 사태 후 지금까지 GE 주가는 25% 가량 급락했다. 취임 무렵 40달러대였던 주가는 30달러선으로 밀려나 있다. 자사주를 매입, 떨어진 주가를 떠받치는게 발등에 불이라고 했다. 정식 회장이 된 지 겨우 17일, CEO로서의 합격 여부를 논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2~3년 뒤 그에 대한 세계 언론과 재계의 평가는 과연 무엇일까.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 [ 약력 ] 1956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GE 직원의 아들로 출생 다트머스대 응용수학과 졸업, 하버드대 MBA 취득 1982년 GE플라스틱 입사 1997년 GE메디컬시스템스 사장 취임 2000년 11월 차기 GE 회장으로 내정 2001년 9월7일 제9대 GE 회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