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도 못 읽고 도장 위조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문학습의 기초 입문서인 천자문도 못 읽은 어리석고 무식한 주제에 남을 속이려 든다는 말이다. 전통사회에선 5~6세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던 이 글이 얼마나 애용됐던지 토지의 순서나 족보의 항수를 매길 때도 천자문 배열순서대로 표기했다. 지금도 한문 하면 '하늘 천,따 지'를 연상하는 것이 우리다. 천자문은 6세기께 양(梁)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것이다. 사언고시 2백50구 모두 1천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천자문'이라 부른다. 주흥사가 2백50구의 운문을 하루만에 지으면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지 머리가 갑자기 세었다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입문서라고는 해도 그 뜻이 깊고 어려워 웬만한 한학자도 다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천자문이다. 단지 천자중엔 중복된 글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글자 익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새김과 음을 달아 놓은 현존하는 천자문중 가장 오래된 것은 1575년(선조8년) 광주(光州)에서 간행된 것인데 일본 도쿄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고 국내에는 지금도 선조 때 한호(韓濩)가 쓴 '석봉(石峯) 천자문'이 일반화 돼 있다. 또 영조 때인 1752년 홍성원(洪聖源)이 편찬 발간하고 1804년 다시 증보판을 낸 '주해(註解) 천자문'이 전해 온다. 우리 풍속에는 첫 돌상에 지 필 묵 천자문책 실 활 등을 늘어놓고 돌잡이가 무엇을 먼저 잡는가를 보아 장래를 점치는 순서가 있다. 옛날 반가에서는 천자문책을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손수 쓴 필사본으로 만들어 가법(家法)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특별한 경우 1천명의 글씨를 한자씩 받아 책으로 묶은 천자문을 돌상에 올리기도 했다. 이만저만한 정성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한국서예가 1천명이 쓴 '천인 천자문'이 완성돼 화제가 되고 있다. 내달 6일부터 전주시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서예 비엔날레의 성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글씨는 천인천색일 테지만 다양한 서체의 경향을 짚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단의 화합이 돋보이는 대작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