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본사를 둔 컴퓨터 제조업체의 파리 영업사무소.영업사원이 노트북 PC에 고객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즉시 프랑스어로 제품 사양.가격.납품일자를 기록한 정식 계약서가 작성된다. 이 조건을 고객이 수락한 뒤 영업사원이 버튼만 누르면 제품 출하 작업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즉,시스템이 자체적으로 고객 신용도를 조회한 뒤 주문 내역을 미국 본사에 알리고 운송 계획을 작성하고 본사에 비축된 재고물량에서 필요 제품을 확보하고 없는 부품은 새로 주문하고 대만 소재 조립공장에 새로 제품 조립을 요청한다. 한편 미국 본사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제품 주문이 시시각각으로 누적돼 생산과 판매,물품 수급 예측이 즉시 수정된다. 사업부와 본사의 대차대조표,외상매입금 및 외상매출금 대장,기업의 현금 수준도 모두 자동으로 갱신된다. 또 프랑스 영업사원에게는 제품 판매에 대한 인센티브,영업수당 등이 프랑화로 계산돼 e메일로 통보된다. 고객 주문내용을 입력해 버튼만 한번 누르면 제품 출하는 물론 판매 이후 본사의 재무상태 변화까지 일사천리로 수정하는 자동화 시스템.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전사적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프로그램이다. ERP란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인사정보 재무정보 생산관리 등의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기업내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즉 모든 기업이 가진 방대한 양의 자료를 개별 부서 사업장 공장 사무실 그리고 수백대의 컴퓨터에 분산하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하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통합의 효과는 자료의 중복 저장,오류 수정,자료 전송 등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소비자 만족도와 기업 신뢰도까지 높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IT업계에서는 "최근 일반에게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인터넷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를 끌어낸 것은 ERP"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ERP업체인 SAP는 매출액이 1992년 5억 달러에서 2000년 6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코닝 SK텔레콤 LG텔레콤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중공업 국민은행 외환은행 하나은행 교보생명 삼보컴퓨터 LG칼텍스정유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 대다수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ERP 구축 붐을 특히 잘 보여주는 분야는 건설. 건설업은 여러 곳에서 작업이 분산돼 이뤄지고 현장 특성상 정보화가 어려운 업종으로 인식됐다. 개별 작업이 현장소장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업무도 토목 건축 주택 플랜트 해외사업 등 분야에 따라 구분된다는 점도 표준 설정의 걸림돌이다. 대우건설의 경우 지난 98년 장기 발전과제로 ERP 시스템 구축을 결정하고 3년간 연 인원 2백여명을 투입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개별 건설현장과 본사를 전용선과 ADSL 망으로 연결하고 지리적 여건상 직접 연결이 어려운 인천국제공항 등 사업장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무선통신망으로 이어 본사와 3백여개 현장을 단일한 네트워크로 통합했다. 결과는 연간 약 10억원의 경비 절감과 평균 10%의 업무 수행시간 단축으로 나타났다. 이런 효과들이 알려지자 최근에는 ERP 구축 붐이 중소.중견업체에까지 퍼지고 있다. 최근 산자부는 40억원을 들여 중기용 ERP 시스템도 개발키로 했다. 조정애 기자 j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