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2:50
수정2006.04.02 02:53
미적분학을 개발한 17세기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허수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중간쯤에 놓인..."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수학자들에게만 이 허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빈주먹으로 기업을 키우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어느 정도의 허수가 필요하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대단한 사업계획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아직은 허수일 뿐인 가공의 수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것이 출발이 아닌 결과일 때 발생한다.
출발선에서의 허수는 채워가면 그만이지만 결과에서의 허수는 분식이며 장부조작에 다름 아니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대우분식의 지극히 작은 단면들에 대해서다.
몇가지 분식사례들을 놓고 아직은 날이 서있는 육성 증언들을 들어보자.
● 허수를 눈치채다
"1995년과 96년 2년에 걸쳐 일본 금융기관들이 대우 계열사에 빌려준 돈을 모두 회수해 갔다. 그래서 대우가 종말을 고했을 때 수많은 해외채권단 중에 유독 일본계 금융기관이 없었던 거다"(전 산동회계법인 K회계사)
일본 금융기관들은 무엇보다 현금흐름을 중시했다.
대우는 95년부터 현금흐름이 나빠지면서 차입금이 급격히 늘어갔다.
냄새를 먼저 맡은 곳이 선수를 쳤다.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도 대우자금을 당겨갔던 은행이 없지는 않았다.
그곳은 대우의 관계회사라 할 수 있는 바로 한미은행이었다.
모 회계법인 대표를 지냈던 K씨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대우가 지분을 갖고 있던 한미은행은 오랜기간 동안 대우에 10원도 빌려주지 않았었다. 물론 막판에 돈을 빌려줬지만 한미은행은 대우의 현금흐름을 매우 나쁘게 평가했다"
현금흐름표야말로 장부조작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회계전문가들 사이에 익히 알려진 사실.
기업이 부도위기에 직면하면 들어오는 현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
그 공백을 메우려면 단기차입금을 늘리거나 보유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
● 부실의 징후들
"대우 계열사는 하나의 엔티티(entity:회계상의 단위기업)였다. (주)대우를 중심으로 모든 계열사의 돈이 모이고 흩어졌다"(김일섭 회계연구원장)
부도설은 놀랍게도 70년대초부터 계속돼 왔다.
12월 결산기를 맞는 매해 겨울이면 '대우가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는 소문이 회계사들 사이에 퍼져갔다.
그만큼 살얼음판을 걸으며 자금조달을 해 왔다.
언제나 부도날 수 있는 기업,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스스로를 무한 확장시키며 굴러가는 기업이 바로 대우였다.
부실징후는 영문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으면서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먼저 감지됐다.
대우는 70년대 중반부터 영문으로 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 오던 터였다.
외자조달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90년대초부터는 대우재단이 보유한 지분을 (주)대우가 보유한 것으로 간주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아예 만들지 않았다.
아니 이 시점부터는 연결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 기말감사 철수사태
역시 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 즉 돈을 벌어들이는 창구였던 대우중공업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다음은 산동회계법인에서 일했던 한 회계사가 당시 현장 감사반원으로부터 전해들었다는 간접 증언.
"98년 대우중공업에 회계감사를 나갔다. 비용으로 처리한 1천8백억원에 대한 입증서류가 없었다. 빼돌린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예고없이 감사를 나가 미처 입증서류를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감사반원들은 일단 되돌아갔다.
일각에선 감사 철수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감사 연기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산동측은 "중도에 감사 철수는 없었다. 회사측이 준비가 덜돼 감사를 연기한 것 뿐이다"고 해명했다.
만약 감사철수로 종결됐다면 당연히 '의견거절'이 나왔을 터이다.
최종 감사보고서는 '적정' 의견이었다.
문제의 1천8백억원을 다음해 재무제표에 반영키로 조율이 있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어떻든 대우 분식에 대한 세간의 의혹은 이런 과정 속에서 통제불능 상태로 커져만 갈 뿐이었다.
● 대우와 대우통신
놀랍게도 분식회계는 금융감독원(통합전 증권감독원)도 이미 적발했던 터였다.
97년 5월 증감원은 (주)대우 등 57개사를 일반감리 대상기업으로 선정했다.
업종별 부채비율과 재고자산 비율, 대주주에 대한 현금대여금 비율이 높거나 현금흐름이 적은 회사가 대상이었다.
대우그룹은 여러개 항목에 해당됐다.
감리결과 (주)대우는 96년 사업보고서에 자산과 부채를 턱없이 적게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외부채 2천9백억원도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증감원은 이 정도는 순이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시정조치만을 내렸다.
감리반으로부터 모든 분식사례들이 속속 보고채널을 통해 올라왔지만 되돌아 내려오는 징계조치는 지극히 경미했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瀏??몇가지 중대한 문제가 적발됐는데 묵살됐습니다"는 일선의 증언이 있지만 이 관계자는 이 대목에서 입을 닫았다.
대우가 문을 닫은 뒤인 99년 12월9일부터 2000년 8월까지 강도 높게 진행된 특별 감리 상황에 대해서도 대부분 관계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은 재판 중이며 잘못하면 여러 사람 다친다는 것이 이들이 증언을 거부하는 공통된 이유였다.
(주)대우 뿐만이 아니었다.
들추는 곳마다 거대한 분식이 악취를 풍기며 튀어나왔다.
증감원이 대우통신 분식회계를 적발한 것은 이미 지난 98년이었다.
단기차입금 일부를 숨겨 순이익을 부풀린 사실이 감리 결과 드러났다.
대우통신은 97회계연도 결산보고서에서 단기차입금 2천6백10억원을 회계장부에 표기하지 않았다.
장부에 올리지 않은 부채, 다시 말해 재무적 암세포가 덩어리째 드러났다.
"부외부채는 장부조작이 절정에 이를 때 쓰는 수법이다. 처음에는 매출액 부풀리기로 시작하지만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돈을 빌려 메울 수밖에 없다"(이성희 금감원 국장)
대우통신은 이렇게 만든 부외부채를 자회사인 세진컴퓨터랜드와 해외 현지법인의 매출채권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고도 최소한 2백80억원의 차입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결과 대우통신은 20억원의 적자를 76억원의 순이익으로 둔갑시켰다.
이 사실이 적발되면서 당시 대우통신 외부감사를 맡은 청운회계법인은 회계법인 사상 처음으로 1개월 업무정지를 받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첫 희생양이었다.
91년부터 7년간 기아자동차의 3조3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분식을 찾아내지 못해 징계를 받았던 청운이 99년 2월 결국 대우에 발이 걸려 문을 닫았다.
주식투자자였건 채권자였건 그 모든 사람들에게 듣고싶은 것을 들려주는 바로 그것이 분식이기도 했다.
[ 특별취재팀 =정규재 경제부장(팀장) 오형규 이익원 최명수 조일훈 김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