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치솟자 손님발길 '뚝' .. '美테러' 유탄맞은 종로 귀금속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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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테러사태 때문에 금값이 엄청 올랐어요.
그 바람에 손님 발길 끊겼지,수출길 막혔지,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불황은 처음이에요…"
서울 종로3가 단성사극장에서 종묘공원에 이르는 봉익동 귀금속 상가.
도·소매점과 가공업체 등 2천여개 업소가 밀집해 국내 귀금속 거래의 70%를 소화해내는 이곳에 최악의 한파가 닥쳤다.
평소 같았으면 예물보러 온 연인과 외국인 관광객,구경 나온 주변 회사 여직원 등이 몰려 지나가기조차 쉽지 않은 거리지만 요즘에는 썰렁하기 그지 없다.
80년대초 서울의 대표적 유곽지대였던 이른바 '종3'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귀금속의 메카'가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 도매상가에 입주해 있는 D업소.
월 평균 1천2백만원어치 정도는 팔았지만 이달에는 7백만원을 간신히 넘길 것 같다고 한다.
미 테러 사건으로 금값이 폭등하면서 거래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만 해도 1돈쭝(3.75g·도매가 기준)에 4만8천원 하던 금값은 4일 뒤에는 5만2천원까지 올랐다.
27일 시세는 하루전에 비해 2백원 오른 5만1천원.
이 가격대는 지난 91년 걸프전 때의 5만8천원 이후 10년만의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급등률로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금값 폭등은 다른 금속에까지 영향을 미쳐 은 다이아몬드 루비 등 이곳에서 취급되는 40여개 모든 품목의 거래량을 대폭 감소시켰다.
박모 사장은 "최소 1천만원은 벌어야 직원 월급과 임대료를 떼고 이문이 남는데 결혼 특수도 없어 이달은 천상 적자"라고 하소연했다.
봉익동 중개업자들의 모임인 서울귀금속중개업협동조합 강남모 이사장(43)은 "이달에만 10여개사가 문을 닫았다"며 "다른 업소가 그 자리를 메우기는 하지만 매장 크기가 5∼6평에서 1∼2평짜리로 줄어들고 취급품목도 고가품 대신 10만원대 이하의 중·저가품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감량경영을 통한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내수뿐 아니라 수출도 부진하다.
보석을 가공해 해외에 판매하는 S사는 요즘 수출이 안돼 10여평 규모의 공장에 재고만 가득 쌓아두고 있다.
김모 사장은 "외환위기 때는 수출로 활로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평소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김모 사장은 "수출물량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던 미국 바이어들의 주문이 끊겼을뿐 아니라 계약이 끝난 물건도 선적이 안되거나 수출대금을 못받고 있다"며 "게다가 금값이 뛰면서 원자재 확보 부담도 커졌다"고 4중고(四重苦)를 토로했다.
지난 80년대초 종묘공원이 조성될 즈음 종로4가 예지동에 있던 업소 1백여곳이 옮겨오면서 형성된 봉익동 상권은 88올림픽 특수와 뒤 이은 '3저호황'에 힘입어 성장세를 구가했다.
IMF 환란 직전에는 최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경기침체 여파와 업체 증가에 따른 경쟁으로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다 이번 테러 쇼크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봉익동 사람들이 아직 희망의 끈까지 놓은 것은 아니다.
"귀금속은 1회용 소모품과 달리 언제든지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중개업협동조합 강 이사장)이라는 이유에서다.
환란의 충격을 헤쳐왔듯 이들은 하루빨리 경기가 풀리고 테러 여파가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