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장은 어린시절 "공부가 취미"라고 할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만 봤다. 신 사장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돼 "공부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고 담임선생을 찾아가 "제발 우리 아들 공부하지 못하게 말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남 고흥의 한 시골학교라곤 하지만 그는 항상 전교 1등을 했다. 이 덕에 3학년에서 5학년으로 월반(越班)을 했는데 월반 후에도 단숨에 1등에 올라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책벌레'란 말을 듣던 시골 어린이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 전국 최고로 치던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떨어지고 말았다. 수학과목은 순천 매산중학교에 다니는 누나 책을 훔쳐본 덕에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책이 없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역사 지리 과목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신 사장은 "해방 직후라 시골에서는 책을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시험치러 서울에 올라와 보니 모범전과니 뭐니 하는 책이 참으로 많더라"면서 "그런 책만 있었더라면 너끈히 붙었을 것"이라며 지금도 아쉬워한다. 신 사장은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셋째자형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고등학교 입시를 20일 앞두고 서울에 올라와 경기상고에 5등으로 합격했다. 고교시절엔 셋째자형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전학을 했다. 그런데도 한눈팔지 않고 공부해 서울대(사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군복무중 행정고시(1회)에 합격, 체신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