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보면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커다란 가오리를 닮았다. 뱃머리에 다가서는 옆 모습은 딴판이다. '어린왕자' 첫 페이지의 삽화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의 복사판이다. 제주도에 딸린 섬 63개중 8개뿐인 유인도의 하나, 비양도(飛揚島). 이 섬처럼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섬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섬 안 곳곳의 표정은 한결같다. 조급함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일상을 버리고, 마냥 게으름을 피워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거기 있다. 한림항에서 뱃길로 15분. 바다와 하늘은 모두 투명한 에메랄드빛 일색으로 눈부시다. 비양도의 출입문인 압개포구는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는 '스타게이트'. 옥돔낚시 미끼로 쓸 한치를 소금에 버무리는 어부의 손길이 그렇게 느릿할수 없다. 시멘트 포장된 일주도로를 시계방향으로 따른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족한 짧은 길이다. 길 위의 그물은 발걸음을 더욱 늦추라고 일부러 널어 놓은 것 같다. 때마침 마주친 나이든 해녀 얼굴에 홍조가 인다. 뭐가 그리 수줍은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해 손사래를 친다. 허여멀쑥한 소 한마리가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며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본다. 바다쪽 길가에 가지런히 놓인 화산석은 비양도가 제주본섬과 같은 화산섬이란 것을 말해준다. 비양도는 그러나 제주도보다 훨씬 젊다. 제주도는 1백20만~70만년전 사이에 용암이 분출하면서 솟아오르기 시작한데 비해, 비양도는 1천년 전에 생겼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목종 5년(1002년)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년이 1천돌인 셈. 화산폭발로 빚어진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바다쪽에 이어진다. 울릉도 코끼리바위의 축소판 같은 큰가지바위, 최고의 돔낚시 포인트로 꼽히는 작은가지바위, 아기를 업은 아낙의 형상인 애기업은바위 등이 느린 발걸음을 심심치 않게 한다. '독살'의 흔적과 제법 큰 민물 '팔랑못'도 신기하다. 교사 2명에 학생수 6명인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를 지나 비양봉(1백14m)에 오른다. 한라산과 북제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거북꼬리, 며느리밑씻개풀 등과 함께 억새가 우거져 오름길이 보일듯 말듯 하다. 30분 걸음의 등성마루를 하얀등대가 지키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자생한다는 비양나무도 있다. 화산폭발로 생긴 섬임을 알수 있는 커다란 분화구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손에 잡힐듯 가까운 맞은편 제주본섬의 완만한 오름들의 곡선이 눈에 잡힌다. 그 사이 바닥까지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하얀 물띠를 만들며 서있는 듯 움직이는 배, 압개포구에 옹기종기 몰려 있는 나지막한 지붕들이 시간을 잊게 만든다. 비양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