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연구한다는 이른바 실패학이 일본에서 화제가 되더니 국내에서도 실패연구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본지 3일자 1면 참조) 배경이야 어떻든 실패연구의 목적이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유사한 실패의 만복을 방지하는데 있다면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다. 어떤 사업이 실패로 판정났다고 해서 그 과정과 중간결과마저 사장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큰 손실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여기에 투자된 유.무형의 자산이 그대로 매몰되는 것도 그렇지만 실패를 토대로 새로이 모색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이 실패사례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혁신적인 선진기업일수록 실패를 철저히 관리해왔다는 것은 이들의 혁신제품 가운데 실패경험에서 돌파구를 찾은 예가 적지 않다는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첨단기술 개발경쟁에 나서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실패연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문제는 정부부문이다. 때마침 과기부는 실패한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대해 징계보다는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따져 볼 것이 있다. 실패를 관리하기 이전에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전제돼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패를 용인하는 선진국과 달리 실패하면 신규과제에 대한 신청을 제한하든가 지원금을 환수하는 등의 벌칙을 가해 왔다. 물론 일부 부처에서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사례가 없지 않지만 그 기준이 자의적인데다 보이지 않는 제재를 수반하고 있다. 게다가 경직적 감사관행이라든지 예산책정 기준 등도 실패인정을 어렵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이 사전적으로는 창의적.도전적 연구보다 안전한 연구를 선호하게 만들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사후적으로는 그나마 실패한 연구조차 성공으로 둔갑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높은 성공률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면 한심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도덕적 해이는 방지하되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근본취지라 할 기초적이고 원천적인 연구가 위축되지 않도록 각 부처에 산재된 연구개발규정을 점검, 실패에 대한 투명한 면책기준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는 결과에 상관없이 널리 확산.공유돼야 한다는 점에서 관리체계 역시 보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