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때아닌 손님맞이 .. 박효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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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하는 논어의 한 구절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15일 방한한다는 소식에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지금 한·일 관계는 냉랭한 상태다.
물론 이러한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이다.
지난 4월에는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터졌고,8월에는 총리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라는 과거의 원죄에서 비롯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90년대 들어 우여곡절 끝에 95년 무라야마 전 총리의 특별담화와,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있었지만,올해 우리를 격분시킨 이 두가지 사건으로 민족화해의 시계추는 한참 후퇴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일 관계는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숙명적인 이웃이다.
이웃사이가 멀거나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이른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는 변할 수 없다.
그래서 어제뿐 아니라 오늘과 내일도 중요한 것이다.
양국 사이에는 남쿠릴 조업분쟁 등 현안도 적지 않거니와,당장 내년에 월드컵 공동개최를 성공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를 상기시키는 비협력의 악순환으로 일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도 우려되는 바는 '정부가 장기적인 대일본 대책을 갖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임진왜란과 한반도 강점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대일외교야말로 국가생존과 번영을 가늠하는 백년대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단기적 대책과 장기적 비전이 어우러져 국익을 극대화하는 외교정책의 묘미가 연출돼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특히 일본은 최근 들어 과거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그 토양 속에서 후세대를 길러내고자 하는 일관된 우익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런데 그 동안 정부가 대처해온 방식은 임기응변 성격이 짙었다.
사태가 벌어지면 허둥지둥 불끄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으며,말의 성찬을 벌이기 일쑤였다.
정부는 그 동안 "역사인식은 한·일 관계의 근간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일본측의 성의있는 조치가 없는 한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그래서 주일 대사를 두번이나 소환했고,대일 군사교류를 중단했으며,일본의 문화개방 일정도 무기한 연기했다.그런데 정부는 불쑥 일본 총리의 방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성의있는 조치가 있었단 말인가.
일본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온 것인가,아니면 일본의 역사인식이 바뀌었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국제적 상황이 급변한 것인가.
상황이 급변한 것이라면 미국의 테러사건 정도일 뿐,그 이외의 상황들은 모두 정부가 4월 대일본 강경책을 취할 때부터 이미 예상된 것들이다.
결국 상황이 똑같다면 하루아침에 돌변한 정부정책의 선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앞장서서 대일 강경론을 외치다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유화론으로 돌아서며 충분한 해명이나 설득없이 국민보고 따라 오라고 하니 국민이 당황하고 어이없어하는 것이다.
정부는 일본 총리가 역사인식문제에 있어 진전된 입장을 표명키로 약속했기 때문에 방한 요청을 수락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과연 진전된 입장이 무엇일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입으로는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책임을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과거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앞으로 이 언행 불일치 문제가 어떻게 해결돼 양국간에 신뢰가 싹틀 수 있겠는지 궁금하다.
보다 현실적으로 내년에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재발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거나,김영삼 정부 때처럼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엄포나 놓을 작정인가.
국민은 '정부가 피리를 불면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울라고 하면 따라우는' 존재가 아니다.
또 국민은 '격분시키면 격분하고,진정시키면 진정하는' 심리전과 홍보의 대상이 아니다.
겸허하게 선이 이렇고 후가 이렇다는 해명을 함으로써 국민적 이해와 합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을 존중하는 '국민의 정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