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요즘 루쉰(魯迅:1881∼1936)기념 행사가 요란하다. 인민일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루쉰'특집기사가 있다. 생애 작품 사상 등 그에 대한 온갖 정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 9월25일은 그의 탄생 1백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은 올해를 '루쉰의 해'로 정하고 연초부터 세미나 등 각종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중국현대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는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사상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도 소설 '아Q정전'등 그의 작품이 소개돼 있다. 그의 이름은 저우수런(周樹人)이지만,'루쉰'이란 호로 더 유명하다. 그가 평생 사용한 이름과 호는 모두 1백70개를 헤아린다. 10여년 전 상하이를 여행하다가 그곳에 있는 유명한 훙커우(虹口)공원을 찾게 됐다. 그런데 그 이름이 '루쉰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훙커우공원은 1932년 4월,24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이 전승기념식을 벌이고 있던 일본 장성들에게 폭탄을 던진 곳이다. 그 이름을 '루쉰 기념공원'으로 할 만큼 그는 중국인들에게 대단한 존재다. 중국인들이 기리는 루쉰에 대한 회상이 한가지 더 있다. 1998년 일본 센다이(仙臺)에 있는 도호쿠(東北)대학에서 석달 간 연구할 기회가 있었는데,내가 살던 곳 근처의 한 작은 집 앞에는 '루쉰이 살던 집'이란 돌기둥이 서있었다.중국의 실권자 장쩌민(江澤民)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때 루쉰 유적을 찾아보기 위해 일부러 센다이시를 찾아왔던 것이다. 장쩌민은 또 도호쿠대 의과대학 교실을 찾아가 어느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앉아 보라고 권유했다고 그곳 대학신문이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그 강의실은 바로 루쉰이 다니던 센다이 의학전문학교(도호쿠대 의과대 전신)의 교실인데,지금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1902년 일본에 온 루쉰은 2년 간 도쿄에서 일본말을 익힌 다음,센다이시로 옮겨가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서양의 새로운 과학기술에 눈뜨게 됐던 그는 의사가 돼 중국에 서양의학을 전파시켜야 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중국의 국어 교재에도 실렸다는 그의 단편 '후지노(藤野)선생'은 이 시기 그의 경험을 실명소설로 엮은 것이다. 당시 해부학 담당의 후지노 교수는 외국인인 루쉰이 제대로 수업을 소화하고 있는지 매주 노트를 제출하게 하고,이를 검사해 틀린 곳을 고쳐주면서 그의 일본어 학습까지 도와주었다.루쉰은 이 교수를 존경해 그의 사진을 자기 서재에 걸어놓았다고 자전 소설에 묘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친일(親日)'이라고 함직하다. 그는 일본에 사는 동안 일본인과 똑같이 생활했다. 1909년 귀국할 때 게다 신고 일본 옷을 입은 루쉰의 모양이 어찌나 일본인같아 보였던지,중국 뱃사람이 "손님,중국말을 아주 잘하시네요"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요란한 루쉰 기념행사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이광수(李光洙:1892∼1950)를 기념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루쉰'이라고 할 수 있는 춘원 이광수는 바로 내년이 탄생 1백10주년이다. 루쉰의 출세작 '광인일기(狂人日記)'는 1918년 5월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발표한 작품인데,루쉰이란 호는 그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광수는 이 보다 조금 앞선 1917년 1월1일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에 연재해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 비슷한 시기 두 사람은 자기 조국에 거의 같은 공적을 남겼다. 루쉰은 1936년에 죽었는 데,이광수는 1950년까지 살았다.특히 그는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사건으로 투옥됐었는데 반년만에 병보석되고 나서부터 친일로 기울어졌다.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일본식 이름을 갖기도 했다.만약 이광수가 1937년에 죽었다면 그는 오늘날 루쉰 못지 않게 칭송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 평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은 일본 식민지였고,중국은 루쉰이 죽을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광수보다 더한 친일파라 할 수 있는 루쉰은 오늘날 중국에서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나,우리는 이광수를 1937년 이후 그의 행적 때문에 매장해 두고 있다.그를 언제까지 매장하고 있을 것인가?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