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칼럼] 保守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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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서건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 일에 대해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집착 또한 그만큼 강할 것은 당연하다.
오랜기간 일본 바둑계를 제패했던 조치훈(趙治勳) 9단은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을 정도다.
최근 다시 선수로 되돌아온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마이클 조던(38)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농구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이라고 말했다.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농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계복귀 의사를 사실상 분명히 했다.
정치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떨쳐버릴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이도 저도 아니면 조던처럼 몸이 근질거려 돌아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을 지내고 은퇴했던 사람이 다시 정계에 복귀했던 경우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저씨이자 미국 26번째 대통령이었던 T 루스벨트가 그렇다.
그는 8년간 대통령을 역임하고 같은 공화당의 태프트에게 물려준 뒤 2년간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며 잘 지내다가 다시 정계로 돌아와 진보당이란걸 만들어 대통령선거에 출마,결국 민주당 윌슨 후보의 승리에 일조했었다.
YS의 정계복귀 그 자체에 대해선 솔직히 말해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또 새 당을 만들어 정계로 복귀하는 것은 썩 잘된 일이 아니라고 보지만,그렇다고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일도 아니지 않느냐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가 되돌아와 큰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고,또 선거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다면 그것 역시 후세를 위해 교훈을 남기게 될 것이란 점에서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YS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또다른 이유에서다.
YS-JP회동을 보수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의는 무엇이며 YS-JP,그리고 DJ,더 나아가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정책의 컬러가 어떻게 다른지를 차제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전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 대해 여당관계자들이 적잖이 화를 냈었다.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한데 대한 반응이었다.
이는 민주당 스스로 사회주의적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임을 거듭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치학자들 중에는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상황 때문에 진보적 정당이 나올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반대의 결론,곧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도 없다는 주장 역시 가능하다.
사회보장제도 산업국유화 정책 등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고전적인 기준은 이제 유럽국가에서도 희미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정책에 관한한 여당과 야당이 이렇다할 차이를 나타낸 적은 거의 없다.
인기영합적인 사회보장제도 확충에는 여야가 논란을 벌인 적도 없다.
보수를 표방하는 자민련과 개혁(그것이 진보와 어떻게 다른지도 의문이지만)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동거에서 정책으로 인한 마찰이 없었다는 것도 그런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바로 이런 여건에서 YS-JP가 만들 것이라는 보수신당은 어떤 정당일까.
특정지역에 바탕을 두는 당이라면 옛날 형태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낱말의 뜻으로는 보수적일지 몰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있을 것은 자명하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보수의 요건을 필요·충분하게 충족시킨다고 보기도 어렵다.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보수의 본질은 정부영역의 축소를 의미한다.
무게중심을 효율에 두느냐 평등에 두느냐가 보수와 진보를 가름하는 기준이다.
사실상 국유화된 은행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구조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을 요구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정치 9단들이 말하는 보수가 그런 차원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지나친 평등의식에 제동을 거는 것이 보수라면 "우린 그런 보수 아니다"라고 나서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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