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이는 하늘은 창세기의 한 장면 같았다. 6월 중순인데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해발 1만피트나 되는 곳에 카라쿨(검은 바다)호수가 있었다. 호수 옆에 2만4천피트가 넘는 두 개의 산 무스타그 아타와 콩구르가 있고 11개 이상의 빙하가 내려오고 있었다. 단 한마리의 새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제3의 극지라고 불리는 곳에 와 있었다" '발칸의 유령들'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케이플런은 '지구의 변경지대'(한국경제신문사)에서 1994년 파미르 고원에 선 느낌을 이렇게 기록했다. 파미르는 옛 페르시아 말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한다고 한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해발 5천m 이상의 천산·카라코람·힌두쿠시 산맥등이 종횡으로 모인 고원이다. 행정적으론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 주에 속하지만 중국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아프가니스탄,키르기스스탄,파키스탄과도 접해 있다. 동파미르에선 해발 5천2백m,서파미르에선 4천m에서 설선(雪線)이 나타난다. 카라코람 산맥에만 해발 7천2백m 이상의 고봉이 33개나 있고 빙산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크 아타를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생긴 여러 하천이 수많은 내륙호를 만든다. 사막과 설산으로 이뤄진 파미르고원은 실크로드를 지나는 대상들에게 지옥의 길이었으나 수천년동안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만들어낸 유적들이 산재한 인류의 보고다. 카라코람 산맥 중간에 자리잡은 장수마을 훈자는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낙원 섕그릴라로 여겨질 만큼 오염이 덜된 땅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파미르고원 산악 동굴에 숨어 있다고 한다. 옛 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숨겨뒀던 곳으로 보통 방법으론 파괴할 수 없어 실전에서 쓴적 없는 무기를 투입할 지도 모른다는 보도다. 아프간 수도 카불 서북쪽 샤리 골고라(망령의 마을)가 풀 한포기 못자라는 폐허로 변한 건 1221년 칭기즈칸이 손자의 복수를 한다며 무차별 공격을 하자 물 대신 동료의 피를 마시며 항전하던 수비대가 몰살된 뒤부터라고 한다. 파미르고원에 또다시 이런 비극이 생길까 두렵다.